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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 다시 생각한다(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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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 다시 생각한다(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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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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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7년전의 일인가. 내 나이 스물세살, 대학 4학년 졸업반이었고 그날은 일요일이라 종로 YMCA강당에서 함석헌 선생님께서 일요일마다 하는 강연회가 있었다. 끝나고 나서 몇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8선 쪽에서 새벽부터 쾅쾅소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점점 커지는 걸 보니 일이 심상치 않을 것 같아』 선생님의 근심스러운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정말, 일이 심상치가 않았다. 서울은 3일만에 인민군 수중에 들어가고, 수원으로 대전으로 밀고 내려간 김일성의 군대 앞에 대구도 부산도 흔들흔들하였다. 호남일대는 이미 공산군의 천하가 되어 있었고, 한반도는 몽땅 「위대한 수령님」의 세상이 되는 것만 같았다. 만일 유엔군이 상륙하여 「불법의 침략자」를 물리쳐 주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통일의 꿈은 이루어졌을지 모르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지도에서 말소되고 말았을 것이다.

「6·25」는 이 겨레의 5,000년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쓰라린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6·25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그리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누가 전쟁을 일으키고 그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그런데 엉뚱한 사람들이 아직 많다.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의 북한 노동당은 알고 있다. 노동당의 핵심당원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할 수가 없어서 거짓말만 해왔다. 지도층은 책임지기 싫으니까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국민은 사실을 알 길이 없으니까 그들의 거짓말을 믿고 있는 것이다.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이 북진을 시도했기 때문에 인민군은 부득이 반격을 한 것 뿐이라고.

한국전쟁을 전후한 북한의 공문서는 미국 국립공문서고에 간직되어 있다. 미국은 50년 한국전에 개입하면서부터 각개 전투장에서 그리고 일시 점령했던 북한지역의 모든 기관들에서 모든 문서들을 가능한 한 다 빼앗아간 것이다. 그런데 77년부터는 정보공개법에 의해 일반에게도 이 문서들이 공개되게 되었으니, 160만 페이지나 되는 이 방대한 문서의 내용을 검토해 본 학자들은 알고 있지 않겠는가. 한국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이런 문서들의 면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조선전쟁」이라는 책을 펴낸 일본인 하기와라 료(추원료)는 알고 있다. 그는 조선인민군 제6사단의 상세한 남침계획서를 비롯, 인민군 총참모부의 극비명령, 김일성의 절대비밀명령 등에 접하여 북이 한국전쟁을 위해 오랫동안 주도면밀한 준비를 다하고 나서 남침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고 있다.

그런데 47년이 흐른 오늘도 한국전쟁은 미군과 한국군이 시작한 침략전쟁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세우는 사이비학자들, 그리고 그 장단에 춤을 추는 이른바 주사파 젊은이들, 그리고 이들을 뒤에서 은근히 고무·선동하는 자칭 진보적 지식인들―이들이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는 반동분자들이라는 사실을 왜 시인하지 않는가.

나는 4자회담이건 남북수뇌회담이건 남과 북이 만나는 일을 찬성하는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북에 쌀을 보내고 옷을 보내는 일을 결코 반대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이 모든 「만남」과 「보냄」에 반드시 선행돼야 할 한가지 전제가 있다. 그것은 북이 종전의 거짓말―「한국전쟁은 미군과 한국군이 북침을 감행했기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라는 거짓말을 거짓말이라고 시인하는 일이다.

뒤늦게나마 북 노동당의 황장엽 비서가 비장한 각오로 북한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와 이제 겨우 그 고백을 하려는 것이라고 풀이가 된다. 다행한 일이다. 황비서는 만천하에 고백해야 한다. 한국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남북은 서로 회담을 하기도 어렵다. 통일은 더욱 바라볼 수도 없는 그림의 떡이다.

북한은 남침의 거짓말이 탄로나지 않게 하기 위해 47년동안 군비만 증강하다 마침내 북한의 죄없는 동포들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든 것 아닌가. 이제 와서는 완전히 「주체성」마저 상실하고 체면도 염치도 없는 집단으로 전락하여 미국과 일본같은 「제국주의 나라들」에 손을 벌리고 먹을 것을 구걸하는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손을 벌리려면 그래도 남한에 사는 우리에게나 벌릴 일이지, 그 거짓말 때문에 이제는 자존심도 잃었는가.

거짓말만 계속하는 아이나 어른의 버릇을 고치는 길은 하나뿐이다. 회초리나 주먹을 들 수 밖에 없다. 힘 없이는 안되겠다는 사실을 「6·25」 47주년을 맞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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