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인터뷰기사 형식 등 다양/대학들,작성요령 강좌 잇단 개설『저는 00출신으로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합격한다면 최선을 다해…』
과거 입사원서의 자기소개서는 매양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최근 L그룹 공채때 접수된 한 자기소개서를 보자.
『키가 후리후리하고 이목구비가 선명하거나 날카롭기보다는 둥글납작하고 수더분하며 덕성스런 모습. 정00씨의 첫인상은 친근한 동네여자였다. 그가 국내 굴지의 L그룹 최연소 여사장이라는 생각은 그의 외모만으로는 유추해 내기가 힘들었다. 「여자에게는 외모만 중요한 시대도 있었지요. 제가 L그룹에 처음 입사원서를 제출했을 때만해도 여자의 능력은 다음 문제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난 20년간 능력으로 승부했습니다」 정사장은 그런 사회현실 속에서 오직 능력하나로 승부했고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73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사장은 97년 D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입사 20년후의 자신을 인터뷰한 기사형식으로 쓴 이 기발한 자기소개서는 당연히 A를 받았다.
올 상반기 주요대기업 입사경쟁률이 27대 1에 이르는 등 바늘구멍이 돼버린 취직관문을 뚫기위해서는 서류전형조차 더이상 만만한 요식행위로 볼 수 없게 됐다. 여기다 창조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인재를 요구하는 추세와 신세대의 「튀는」 성향이 합쳐져 눈에 띄는 자기소개 아이디어가 백출하고 있다. 나를 3인칭 「그」로 놓고 소설이나 희곡을 쓰는 방식에서부터 「무엄」하게도 신을 빙자해 계시를 내리는 형태까지 등장한다.
아예 자신을 상품으로 설정해 놓고 고객(회사)에게 팔겠다는 기획서 형태의 소개서도 있다. 「올해 경제사정을 볼때 대체수요(경력사원)는 거의없고 신규수요(신입사원)도 얼마되지 않아 68년과 76년 사이에 생산된 제품(입사지원자)은 판매(입사)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 뒤 「귀사는 이러이러한 장점과 단점이 있고(고객분석) 나에게는 이러이러한 능력이 있으니(상품분석) 나를 구매(채용)하면 큰 이득을 볼것이다」라는 식이다.
내용파괴뿐이 아니다. 모이벤트기획사에 제출된 자기소개서 중에는 아예 인터넷 홈페이지처럼 꾸며 성장과정, 학교생활, 성격 등의 각 사이트를 찾아가도록 한 것, 자신의 사진을 스캐너로 컬러프린터한 다음 그 위에 소개서를 쓴 것 등 형식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 각 대학에 자기소개서 작성요령을 가르치는 과정도 생겨났다. 한양대 안산캠퍼스는 입사지원서 작성요령 등 입사전략을 가르치는 「일과 직업의 세계」과목을 이번학기에 개설, 학생들에게 취업전략 전반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동덕여대의 경우 취업안내실에서 자기소개서 작성요령을 안내하는 책자를 따로 만들어 두고 학생들의 상담을 받고 있다.
현대그룹 인력관리위원회 이희준(32) 대리는 『똑같은 자기소개서를 이회사, 저회사마다 내는 것보다는 지망회사의 성격과 사업방향 등을 잘 분석한 뒤 회사가 원하는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음을 최대한 알리는 것이 요령이라면 요령』이라며 『그러나 무조건 튀는데만 신경을 쓴 나머지 경망스럽거나 가벼운 느낌을 주게되면 서류심사에서 통과가 어려우므로 품위있게 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이동훈 기자>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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