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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나는 한국인/이희정 국제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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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나는 한국인/이희정 국제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7.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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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향땅 진동을 밟아볼 수 있겠습니까』「훈」할머니는 19일 밤 인터뷰를 마치려는 기자에게 통역을 통해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동안 고향땅을 밟을 수 있게 됐다는 희망에 부풀어 기억 되살리기에 안간힘을 써왔던 그의 뜻밖의 질문에 기자는 몹시 당황했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한국인이다. 이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살아서 고향땅을 한번 밟고 싶다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머니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기자는 『할머니에게 고향을 찾아주려고 모두들 애쓰고 있다. 한국기자들이 이곳에 온 것도 그것 때문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조차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의 지적대로 14일 한국일보의 첫 보도이후 한국기자들이 속속 프놈펜으로 날아와 그의 신원파악에 열을 올렸으나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은 실망스럽기까지 한 게 사실이다. 할머니는 고향과 가족에 관한 여러 추억들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이나 부모 형제의 이름은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할머니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 또한 없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할머니의 옛 남편 다다쿠마 쓰토무(지웅력)씨는 할머니가 분명 「조선여자」였다고 밝혔다. 할머니의 뿌리찾기는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할머니는 50여년 동안 이국땅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난의 세월을 겪었다. 처음에는 일제에 당했고 그 뒤에는 「킬링필드」에서 당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국인임을 잊고 살도록 강요당했다. 잊고 싶어 잊은 것이 아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잊혀진 기억들이 단 며칠사이에 쉽사리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평탄한 삶을 살아온 우리의 횡포일 뿐이다.

할머니를 하루빨리 한국으로 모셔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할머니의 뿌리찾기는 한국에서, 그의 고향땅에서 차근차근 진행돼야 한다.<프놈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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