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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 맞잡은채 눈물바다/서울서 간 위안부출신 할머니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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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 맞잡은채 눈물바다/서울서 간 위안부출신 할머니 상봉

입력
1997.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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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옛상처 쓰다듬기’일제시대 동남아에서 치욕의 세월을 보낸 위안부 출신의 두 할머니가 18일 프놈펜 두싯호텔에서 눈물의 상봉을 했다. 조계종 산하 「나눔의 집」 원장 혜진 스님과 함께 훈 할머니를 면담하러온 김복동 할머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도 일본군 군대위안부 출신으로 할머니를 도우러 한국에서 왔습니다』 김 할머니의 떨리는 인사말에 훈할머니는 그의 두손을 부여잡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할머니가 『나는 고향이 부산』이라고 말하자 훈할머니는 『내 고향은 부산에서 40∼5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며 『황기연씨를 만난후 지난 1년동안 많은 한국인들이 도움을 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할머니간의 간단한 일문일답이 이어졌다.

―나는 김복동인데 할머니의 옛날 이름은 뭐죠?

『남아인 것 같아요. 너무 오래돼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국가서 살고 싶으세요?

『한국에 꼭 가고 싶습니다』

이때 혜진 스님이 향나무 염주를 꺼내보이며 『고향의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하자 할머니는 염주를 코에 댄채 냄새를 맡다말고 스님의 팔위에 쓰러져 어깨를 들썩거리며 한참을 흐느꼈다.

이어 정신대문제 연구회 이상화 총무가 위안부로 끌려오게된 경위를 물었다. 할머니는 『어느날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사람이 모이라고 해 한참을 걷다가 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갔다』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모아 떠나곤 했는데 도중에 감시의 눈을 피해 도망쳐 고향으로 갔으나 집에 아무도 없어 할 수 없이 다시 일행에 합류해 배를 타고 이곳에 왔다』고 진술했다.

위안소에서의 생활에 대해 질문이 이어졌으나 할머니는 공개적인 기자회견 석상에서 말하기 꺼리는듯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비공개로 질의키로 했다. 이총무는 『국내에도 할머니처럼 충격때문에 위안부생활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분이 있었다』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위안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 자리에서 사진 1장을 훈 할머니에게 보여주었다. 훈 할머니의 여동생 김남선씨와 어머니 유문애씨가 함께 찍은 사진인데 할머니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오른쪽(어머니)은 얼굴이 너무 늙어 잘 알아볼 수 없고 다만 코부분이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왼쪽(여동생)을 가리키며 『눈과 눈썹 부분 등이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사진에 있는 사람들이 어머니와 여동생이라고 말해주자 훈할머니는 『동생은 늙었지만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며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프놈펜=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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