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포기」하는 것이다. 한 문장 한 신을 써놓는 일이 아무리 힘겨웠다고 해도 「그래 이 정도면 됐다」라고 스스로 말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 정도로는 안된다」라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스스로의 검열을 강화하기 위해 작가마다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컴퓨터게임을 한다. 글을 쓰다가 이제 그만 포기하자는 생각이 치밀 때 얼른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이라는 것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서 그것에 매달리는 동안은 철저히 멍청해질 수가 있다. 그렇게 머리를 비우고 나서 다시 내 글을 들여다보면 「역시 안되겠군」이라고 깨달을 수 있게 된다.그런데 문제는 점점 글쓰는 시간보다 게임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데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한 집중을 요구하는 일이고 그 집중은 또한 대단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게임 역시 집중을 요구하긴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달콤한 집중인가. 아무런 책임감과 자책감 따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한 판을 넘기는데 실패하면 얼마든지 그 판을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왜 늘어놓고 있는가 하면 요즘 우리 살아가는 게 비슷한 양상을 띄는 것 같아서이다. 현실은 사실상 수 많은 집중과 책임감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참된 민주주의라든가 내 자식 세대를 생각하는 환경문제, 기우뚱거리는 경제문제 등등…. 어느 하나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단어만 들어도 골치가 지끈거린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딴 즐거움에 탐닉하려든다. 컴퓨터게임과 같은 현실도피성 즐거움을 주는 것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현란한 쇼코미디가 그렇고 때로는 경도된 이데올로기도 그 역할을 해준다. 현실을 직시하기가 괴롭고 골치아파서 우상과 같은 이데올로기에 집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현실의 문제는 점점 곪아가고 있다. 마감시간을 넘겨 방송시간이 되기 전에 게임은 끝내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