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러시의 꿈이 깃들인 스캐그웨이를 출발/수채화같은 하인즈·주노를 거쳐 케치칸까지/중간중간 짬을 내 연어낚시·인디언문화 탐방…알래스카. 티끌없는 원시의 순결함이 그대로 숨쉰다. 이 땅에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오만을 감히 저질러선 안된다. 오히려 인간과 자연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 풍요의 삶을 일궈 내야 한다. 1958년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된 알래스카는 아직도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이 전개되고 있는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그 도전은 파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자연과 공존하는 환경친화적인 도전이다. 미국의 마지막 프론티어, 이 땅에 들어서면 당신도 곧 개척자의 심정이 된다.
자연의 정수인 글래시어 베이(Glacier Bay·빙하만)를 빠져나온 크루즈여객선 「바다의 전설」호는 선수를 남향으로 돌렸다. 크루즈의 두번째 파트인 기항지관광이다. 첫번째 들르는 스캐그웨이부터 하인즈, 주노, 그리고 케치칸까지 저마다 독특한 향취와 풍물이 길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캐그웨이는 1880년대 몰아친 알래스카 「골드러시(Gold rush)」의 출발지. 한계에 달한 본토의 사금채취업자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좇아 물밀듯 몰려 들었다. 빙하가 녹은 물이 탁류를 이뤄 굽이치는 계곡마다 파헤쳐지고 절경인 산허리자락마다 커다란 구멍들이 뚫렸다. 마을은 일본인 유곽까지 들어설 정도로 「붐」을 이뤘다.
그러나 인간의 횡포에 대해 자연은 분노를 폭발했다. 살을 에이는 추위와 삭풍에 개척민은 차례로 쓰러져 갔다. 결국 「노다지」를 향한 꿈은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마을 북쪽 어귀에는 개척시대의 공동묘지가 당시의 처절했던 삶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허무만 깃든 공동묘지는 인간이 대자연 앞에 얼마나 초라한 개체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100여기의 초라한 묘지 입구에는 금칠을 한 커다란 바위에 「세상에서 가장 큰 금덩이」라고 새겨 숨진 이들의 넋을 달래주고 있다. 사연중에는 「선인과 악인의 결투」라는 흥미거리도 빠지지 않는다. 1889년, 1만을 넘어선 마을주민 가운데 「소피 스미스」는 최고 악당이었다. 스미스의 횡포를 보다 못한 보안관 프랭크 리드는 결투를 신청, 마을 대로에서 맞붙었다. 총구에서 불을 토해내기가 무섭게 둘이 동시에 쓰러졌다. 악인 스미스는 현장에서, 의인 리드는 3일 후 숨을 거뒀다. 현재 둘은 공동묘지에 마주보고 누워 있다. 다만, 악당의 묘에는 썩어가는 묘비명만이 초라하게 서 있으나 보안관 리드의 묘에는 번듯한 십자가와 꽃다발이 놓여 대조를 이룬다. 묘지 한구석에는 「강산현인, 1906 계」라는 묘비명의 한 일본인의 무덤도 있다.
스캐그웨이와는 대조적으로 하인즈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인간의 지혜로움을 보여준다. 자연과 어울려 들어선 마을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여기가 미국의 국조 흰머리독수리의 최대 서식지. 하인즈에서는 옵션으로 택하는 연어낚시가 제격이다. 8월에 피크를 이루는 연어낚시의 미끼는 안초비(큰 멸치 일종)나 정어리. 1인당 100달러를 내면 모터보트와 낚싯대 일체가 제공되는 낚시를 4시간 동안 즐길 수 있다. 할 일은 걸려든 연어를 낚는 것뿐이다. 연어를 즉석에서 장작불에 구워먹는 프로그램도 있다. 맑은 개울에는 무지개송어도 가득, 「꾼」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물좋은 곳」이다.
3번째 기항지 주노는 알래스카주의 주도. 인구는 불과 4,000여명. 미국 최대의 주로 전국토의 20%를 점하는 알래스카의 주도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한적하다. 아담한 주지사 관저와 박물관 등은 둔덕 그대로의 곡선을 살려 오르락 내리락 하며 지어져 있다. 환경에 순응하려 애쓰는 노력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자연은 이에 대한 보답을 잊지 않는다. 동토의 척박한 오지로 외면받던 알래스카는 이제 회계결산 때마다 남는 예산을 전 주민에게 배당금처럼 나눠주는 미국 내 유일한 주가 됐다. 차로 10분만 나가면 거대한 빙하지대 「멘델홀 글래시어」를 만난다. 옵션으로 헬기관광(160달러)을 골라 끝없이 펼쳐진 빙하를 공중에서 조망할 수 있으며 걸어서 빙하에 근접할 수도 있다.
마지막 기항지 케치칸에서는 원주민의 풍성한 문화와 만난다. 인디언보호구역내에 펼쳐지는 이들의 문화와 정신세계는 현대인에게는 또다른 경이로 다가온다. 마을어귀에 하늘을 찌르며 서 있는 토템폴은 더욱 당당하다. 이제 그들도 잃었던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 있다. 정신이 오염되지 않는 한 그날이 온다는 굳센 믿음과 함께.
◎알래스카는 어떤 곳/미,1867년 러시아에 720만달러 주고 매입/1958년 49번째주 승격,원유 등 자원의 보고
알래스카는 에스키모와 아메리카 인디언의 고향이다. 원주민은 극동의 시베리아와 미 대륙이 맞닿아 있던 선사시대 당시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온 아시아 북방계 민족의 후예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원주민은 크게 알래스카 극동지역에 유포된 이누피아트, 유피크 에스키모(이뉴이트)와 남서부의 알류트인, 내륙의 아사바스칸 인디언과 남동부에서 남중부에 걸쳐있는 하이다, 틀링기트, 침시안 인디언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 저마다 독창적인 문화와 언어를 지켜왔다. 특히 미 본토의 「수」족과 혈통을 같이 하는 이 곳 인디언들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워나가고 있다.
백인문명의 처음 상륙은 1741년. 덴마크인 비투스 베링이 이끄는 러시아해군탐사대가 「신세계」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모피사냥꾼과 수집꾼을 필두로 한 러시아문명권이 알류산열도를 따라 해안가에 들어섰다. 하지만 모스크바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진 알래스카는 관심 밖의 땅이었다. 러시아황제는 1867년 링컨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이던 윌리엄 시워드가 720만달러에 팔 것을 제안하자 재고도 없이 미국에 넘겨버렸다. 1에이커(1,200여평)당 2센트정도의 헐값이었다. 당시 미국내에서도 「쓸데 없는 데 돈 썼다」는 비아냥이 많았다. 하지만 알래스카는 엄청난 자연의 보고임이 1세기가 흐른 뒤에야 밝혀졌다. 러시아는 땅을 쳤고 미국은 흐뭇했다. 석유와 금 등 엄청난 지하자원을 비롯, 풍부한 수자원과 삼림은 말 그대로 풍요를 부르고 있다.<알래스카(미국)=윤석민 기자>알래스카(미국)=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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