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다원’ 시절 등 50년대 일화 숨김없이 풀어/몸 담고 부대껴 온 문단사 걸쭉하게 정리문단 47년. 강산이 다섯번 가까이 바뀌었을 세월이다. 유난히 굴곡 많았던 우리 현대사는 오죽할까. 소설가 이호철(65)씨가 이 긴 세월 몸 담고 부대껴 온 문단사를 정리하고 있다. 「이호철의 문단일기」란 부제가 붙은 「문단골 사람들」(프리미엄북스간)은 그 첫 결실. 50년 월남했을 무렵부터 58년 등단한 시인 고은씨를 만날 때까지, 50년대 우리 문단을 「체험」한 기록이다.
제제다사한 문단의 인물, 그들이 만들어 갔던 한 시대의 풍정은 이 글을 좁은 의미의 문단사에서 벗어나 하나의 문화사로 읽히게 한다. 『나는 일단 모든 경험과 체험은 존중되어야 하고, 샅샅이, 사그리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이다』는 게 이씨의 말. 그만큼 생생하다.
작가가 체험한 사람들에 관한 너스레는 웃음을 자아낸다. 「나는 술이 얼근한 김에 『어때요 제가 안마 좀 해드릴까?』하자, 모윤숙여사는 『좋지, 고향 젊은이에게 안마 한 번 받아 보자꾸나』하였다. 나는 그대로 서슴없이 모여사의 파자마 입으신 엉덩이를 타고 앉아, 등을 주무르고 두드리면서 능청섞어 한 마디 하였다. 『야하, 영광이지 뭐요. 모여사님 등허리를 이렇게 타고 앉기는 하나, 둘, 셋, 그러니까 내가 네 번째 정도나 될까요?』 그러자 모여사는 『비켜라, 이눔 자석』하고 와락 등을 흔들어 나를 떼어놓았다」는 일화는 지금은 작가가 회원이 되어 있는 「예술원」 창립(54년)을 둘러싼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이씨는 또 데뷔 직후 미당 서정주씨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그의 시를 줄줄이 외워 대자 「미당이 『내 새끼, 내 새끼』하며 볼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끌어다가 입을 쪽쪽 맞추는데, 놀랍게도 당신의 혓바닥까지 내 입으로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이런 진짜배기 입맞춤은 나로서는 미당과의 그것이 난생 처음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함남 원산 출신인 이씨는 고 3때 인민군으로 동원됐다가 고리키의 문고본 에세이 한 권을 들고 50년 12월9일 LST로 부산에 상륙, 월남했다. 이후 항만노동자로 일하며 광복동의 「밀다원」다방을 동경했던 시절, 황순원씨를 만난 후 문단 데뷔까지 4년여가 걸린 사연, 환도 후 서울의 다방·술문화 등을 통해 남·북문인들의 일화와 시대 정경을 걸쭉한 문체로 풀어놓는다. 59년 김동리·이어령씨의 논쟁으로 이 시대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 일화의 주인공은 일전 작고한 박재삼 시인. 박시인과 작가는 50년대초 문단의 말석으로 단짝이었다. 박시인은 생전에 「굳세어라 금순아」가 18번이었다. 소설가 홍성유씨가 글을 쓰다 이 노래가사를 인용할 대목이 있었는데 누군가 『그 노래라면 박재삼』이라고 알려줘 한밤중에 전화를 걸었다. 박시인은 중환 중임에도 가사를 그냥 일러주기는 뭐하다며 전화통에 대고 2절까지 노래를 불렀고 온 가족이 만류했다….
『세상 흘러온 것은 필경 이런 것이고, 우리는 지금 웃고 있지만, 이것이 더도 덜도 아닌 사람살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는 이씨는 『60·70·80·90년대, 그리고 과욕일지 모르나 2000년대 문단사까지 한 권씩의 분량으로 써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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