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권한집중 사정기구화… 관치금융 심화 우려/정치투명성 미흡땐 ‘부패 0순위’ 시기상조론도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따라 새로 탄생할 금융감독원은 명실상부한 경제의 「최고권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경제행위가 돈(금융)을 매개로 이뤄지는 이상 금감원은 비단 금융 뿐 아니라 경제 전체를 관할한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이런 포괄적 감독기능은 금감원이 장차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정기구」로 쉽게 변색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금감원의 중립성확보 및 권력기구화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구축이 시급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겉으로만 보면 금감원은 은행 증권 보험 등 3개 금융감독기구의 산술적 통합에 불과하다. 제도상으론 기존 감독원들에 비해 업무가 늘어난 것도 없고 권한이 추가된 것도 없다.
하지만 떨어져있던 힘도 한곳에 모아 놓으면 스스로의 확장 메카니즘에 의해 강도가 더욱 커지게 된다. 「1+1=2」의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게 바로 힘의 논리다. 은행 증권 보험 및 제2금융권의 감독권이 집중될 경우, 더구나 감독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경우 그 칼날의 위력은 기존 힘의 물리적 총합 아닌 화학적 융합반응을 통해 무한대로 증폭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특정재벌의 자금이동상황을 감시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하자. 현 제도하에선 각 금융기관이 보유한 기업자료를 은행·증권·보험감독원을 각각 통해 모아야 할 뿐아니라 기관별 오차도 커 정확한 현황파악 및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하지만 금감원에선 세 갈래로 진행되던 과정이 한 조직안에서 일사불란하게 전개될 수 있다.
만약 현정부 출범초 현대그룹에 대한 금융제재같은 상황이 재연될 경우 ▲은감원을 경유한 은행들의 시설자금대출중지 ▲증감원을 통한 상장불허 등 조치가 금감원 체제하에선 훨씬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금감원은 이 때문에 사정기구, 특히 잠재적으론 재벌규제기구의 성격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금융기관을 통해 기업의 자금이동상황을 매일 손금보듯 파악할 수 있으므로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현장조사를 해야하는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보다 소리나지 않게 훨씬 매서운 칼날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만약 5·6공때의 「금융계 황제」같은 사람이 금감원장 자리에 앉는다면 관치금융의 폐해는 당시보다 훨씬 심각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계에선 금감원장 자리가 일반 경제관료 아닌 권력핵심인사의 몫이 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하지만 「깨지기 쉬운 그릇」으로 비유되는 금융을 경제원리 아닌 정치·사정의 논리로 접근한다면 낙후된 금융은 기반조차 와해될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금감원에서 의도했던 선의의 결과(감독권 효율화)도 기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금감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하며 반대로 부패된 권력하에선 금감원은 가장 먼저 부패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권력집중의 폐해가 속속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 파괴적 부작용이 잠재된 감독권 통합은 시기상조란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정부기구 개편으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쳐 재정경제원이라는 슈퍼부처를 탄생시켰지만 정책추진의 비효율이 더 커진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권력(권한)집중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권력분산이 추진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역행하는 조치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감독권의 일원화와 감독권의 독점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금감원이 일원화의 효율성을 가져올지 아니면 집중의 폐해를 양산할 지는 전적으로 정치권력의 투명성과 분권화에 달려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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