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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패와 「소금」(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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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패와 「소금」(장명수 칼럼)

입력
1997.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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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산당들은 모두 시들어 가는데, 일본 공산당은 날로 싱싱해지고 있다. 원조 공산주의는 그 종주국인 구소련과 추종국들을 붕괴시키며 실패로 끝났지만, 일본에서 개량된 공산주의는 약진하고 있다.작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15석이던 의석을 26석으로 늘려 제3야당으로 발돋움한 일본 공산당은 지난 4월 지방의회 보선에서 의석 4,000석을 돌파, 지방의회에서의 제1당 자리를 요지부동으로 지키고 있다. 중의원 선거에서의 득표율은 13%, 득표수는 726만표로 여당인 자민당 득표의 40%나 됐다. 연립정권에 참여한 정당들의 총여당화, 총보수화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유일한 비판세력으로서 공산당을 성원하고 있을뿐 적극적인 지지가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유력하지만, 무기력한 일본 정가에서 신장세가 두드러지는 정당은 공산당밖에 없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인 일본에서 공산당이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공산당이 일찍이 구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 일본적인 공산주의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패권주의, 독재, 정권세습, 테러 등을 비판하면서 구소련 중국 북한과의 관계를 단절했고, 91년 구소련 공산당이 해체됐을때는 환영성명까지 발표했다. 일본 공산당은 일본의 과거청산에 대해서도 국제적인 양식을 수용하는 주장으로 진보적인 일본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원본을 능가하는 자기 것을 만들어온 일본인들의 솜씨는 이데올로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번째로는 일본 공산당이 자본주의를 잘 알고 있어서 자본주의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공산당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던 마쓰모토 젠메이(송본선명·71) 의원은 『전국시대에 평화를 말해도 소용이 없듯이 자본주의체제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것이다. 자본주의를 개혁하면서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 중심의 정치로 부패가 심각하고, 미국의 영향력이 너무 크고, 국력에 비해 국민복지가 소홀하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들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은 공산당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산당의 후와 데쓰조(불파철삼) 위원장, 시이 가즈오(지위화부) 서기국장, 그리고 당간부회 위원인 마쓰모토 의원 등은 모두 도쿄대 출신이다. 1922년 창당된 일본 공산당은 천황제 폐지와 전쟁반대 등을 주장하면서 극심한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한평생 뜻을 바꾸지 않는 당원들이 있었고, 구소련과 중국의 패권다툼에 휘말리지 않고 독자노선을 지켜온 지도부가 있었고, 항상 우수한 인재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오늘 정치부패를 막아줄 「소금」으로서 공산당을 선택하기까지 일본 공산당은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계속해 왔다.

40세때 처음 중의원에 당선되어 9선을 기록하고 있는 마쓰모토의원은 『젊어서 좌익아닌 사람도 문제지만 나이들어 좌익인 사람도 문제라는 말이 있는데 당신이 한평생 좌익인 것은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젊어서 공산당원이었다가 지금은 자민당 의원으로 각료가 된 사람이 있긴 하다』고 웃으며 받아 넘겼다. 그리고 자기에게 공산주의란 이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고 말했다.

『17세때 태평양전쟁이 일어나 나는 해군학교에 입교했다. 교장선생님은 10년후 학자가 되기보다 1년후 병사가 되라고 훈시했다.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내가 19세때 전쟁은 패전으로 끝났다. 옳다고 믿었던 전쟁이 잘못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나는 「왜?」라는 의문에 매달렸다. 공산당만이 탄압에 굴하지 않고 전쟁에 반대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사회주의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대학 3학년때 공산당 당원이 됐다』

『정치를 한다면 대통령을 해야지 소금이 뭐야?』라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다. 그리고 신념을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 엘리트가 너무 적다. 그래서 정책정당이 성장하지 못하고, 유권자들은 지역감정이나 인물에 쏠릴뿐 대안으로서의 정당을 찾기 어렵다. 일본 공산당의 약진은 하나의 현상일뿐 변화의 시작으로 보기에는 빠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편집위원·도쿄(동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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