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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무덤/김학준 인천대 총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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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무덤/김학준 인천대 총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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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소련 건국의 아버지 레닌의 묘지에 관한 러시아 내부의 논쟁이 짤막하게 보도됐다. 이 논쟁은 지난날에는 소련공산당의 고위지도자였으나 오늘날에는 반공적인 노선을 걷는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크렘린광장에 마련된 레닌국립묘지를 없애려고 한데서 시작됐다. 이 계획에 따르면 옐친은 레닌국립묘지에 안치된 레닌의 미라를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묻힌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가족묘지로 이장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소련공산당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자처하는 러시아공산당은 옐친의 제의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레닌국립묘지를 지금의 위치에 그대로 존속시킬 것을 주장한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었다.양쪽의 주장에는 모두 정치적 계산이 포함되어 있다. 옐친으로서는 국회의 제1당이 되어버린 러시아공산당의 기세를 꺾기 위해서라도 레닌국립묘지를 없애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가족묘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던 레닌의 유지를 앞세워 이장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반면에 소련공산당이 레닌의 유지를 어기면서까지 크렘린에 레닌국립묘지를 세워놓고 그것을 자기네 정통성의 근거로 썼듯 러시아공산당도 레닌국립묘지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필자는 이 논쟁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레닌이 이 논쟁으로 말미암아 창피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장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또는 이장을 둘러싼 논쟁에 말려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레닌에게는 「부관참시」에 버금가는 수모가 아닐까. 만일 옐친의 구상대로 레닌국립묘지가 폐지되고 그래서 레닌의 미라가 해체된 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가족묘지로 이장된다고 하자. 그렇게 된다면 처음부터 그곳에 묻힌 것만 못한 꼴이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레닌의 후임자였던 스탈린의 무덤, 그리고 스탈린의 후임자였던 흐루시초프의 무덤을 각각 떠올리게 된다. 스탈린의 경우 화려한 국장의 예우를 받은 뒤 미라로 처리된 채 레닌국립묘지에, 그리고 레닌 바로 앞에 안치됐지만 흐루시초프가 스탈린격하운동을 벌인 뒤 거기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는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죽었기에 레닌국립묘지가 아니라 모스크바 근교의 시민공동묘지에 묻히게 됐고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곳에서 잠들고 있다. 시민공동묘지에 묻혔으므로 역사의 변전속에서도 쫓겨나는 수모를 겪지않고 편히 지내는 셈이다.

이렇게 볼 때 레닌이나 스탈린은 모두 흐루시초프를 부러워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니 그들이 진정으로 부러워해야 할 공산주의자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우선 헝가리의 공산주의 지도자였던 임레 너지를 꼽을 수 있다. 56년 헝가리에서 반소자유화운동을 전개하다가 소련에 의해 처형됐던 그는 처음에는 무덤조차 갖지 못했다. 헝가리를 침공한 직후 그를 처형했던 소련점령군은 시신을 기름종이에 둘둘말아 인적이 없는 지역의 길거리에 봉분도 묘비도 만들지 않은 채 묻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 자체를 헝가리의 국가비밀로 삼아 추모객들의 접근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헝가리에 마침내 반소반공의 자유민주정권이 들어서자 그의 유해는 발굴되어 새롭게 「국장」의 예우를 받은 뒤 새로 조성되고 성역화한 국립묘지에 이장되기에 이르렀다.

이어 칠레의 민정 지도자였던 아옌데를 꼽을 수 있다. 70년대초 마르크시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칠레의 대통령이 된 그는 몇해 뒤 군부쿠데타로 목숨과 정권을 동시에 잃고 수도 산티아고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도시의 어느 공동묘지에 버려지다시피 묻혀 버렸지만 뒷날 자유민주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도의 중앙공동묘지의 「대통령 묘역」으로 화려하게 이장됐다.

필자는 그동안 세계적 정치가와 혁명가들의 무덤을 100곳 이상 가 보았다. 앞에서 꼽은 무덤들 역시 모두 가 본 것이다. 거기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사람에겐 죽은 뒤의 명예가 소중하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살아있을 때 막강한 권력자였고 그래서 죽어서 화려한 장례를 치렀다고 해도 뒷날 「부관참시」된 경우보다 차라리 죽을 때 초라했을지언정 뒷날 정당히 예우된 경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그들의 유택현장에서 실감했던 것이다. 정치인들이여, 현세의 허명을 자랑말고 후세의 평가를 무서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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