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역감정/고칠 수 없는 병인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역감정/고칠 수 없는 병인가

입력
1997.06.18 00:00
0 0

◎선거때만 되면 불거지는 지역주의 논쟁/연말 대선을 앞둔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TK역할론·영남연합론·중부권 대망론…/‘그들의 고향싸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또 떠들어 대기 시작합니다. 지겹다 못해 넌더리가 나요. 국가를 이끌어 갈 비전은 제시하지 않고 그저 「내 고향은 어디」라고만 강조하고 있어요』 연말 대선을 앞두고 벌써 시작된 「지역감정 부추기기 경쟁」을 보다 못한 독자가 취재팀에 이런 전화를 걸어 왔다. 『화합을 외쳐대도 모자랄텐데 TK니 PK니 하고 편가르기 경쟁만 하고 있어요. 국가 최고지도자 후보라는 사람들이 그런 비생산적인 논쟁을 되풀이 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선거때만 되면 불거져 나오는 지역주의 논쟁.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유독 더 심하다. 지역전쟁으로 불렸던 13·14대 대선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처음 한동안은 「지역화합의 적임자」나 「국론통합의 선봉장」을 자임하다 선거전 막바지에 이르러 슬며시 지역감정 카드를 꺼내 들곤 했지 본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역 싸움을 벌이지는 않았다. 더욱이 측근들이 은근히 「동향사람 도와달라」거나 「우리끼리는 뭉쳐야지 않겠느냐」고 내비쳤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아예 당사자들이 「나는 ○○사람」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15대 대선을 향한 지역감정 싸움은 「TK역할론」 「영남 연합론」 「박찬종 순리론」 「중부권 대망론」 등의 선전논리를 앞세운 신한국당 예비 주자들의 경쟁에서 이미 점화됐다.

함남 함흥 태생이나 경북과 연고가 깊은 이수성 고문은 『지역감정을 활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내가 부추기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영남연합론을 배제하지 않지만 시도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다른 자리에서는 『나는 정통 TK』라고 발언하고 있다.

황해 서흥 태생인 이회창 대표에게 「지역」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변수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본적지 충남 예산에서는 『예산은 내 고향』이라고 주장하고 황해도민을 만나서는 황해 출신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영남 연합론」이 부상하자 「지역」언급을 삼가고 우회적으로 「영남 배제론」에 무게를 싣고 있다.

김윤환 고문은 TK이면서도 영남 배제론을 주창했지만 그렇다고 지역감정 부추기기 경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다. 『TK주자가 또다시 나오는 것은 지역감정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영남 출신은 자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특정 후보를 위한 「역설적인 지역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이다. 박찬종 고문은 PK지역의 대표성을 강조하며 부산·경남 지지세 확산을 고대하고 있다. 한편 이한동 고문은 『영남도 호남도 아닌 경기도 출신이 대임을 맡아야 한다』고, 이인제 경기지사는 『두차례의 국회의원과 민선지사를 경기에서 지냈다』고 각각 다른 각도에서 「중부권 대망론」을 펴고 있다.

지역연고가 약한 이홍구 고문만이 『지역주의에 편승한 경선 운동을 중지해야 한다』며 반지역주의 원칙을 제시했다.

최근 신한국당 대의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는 「후보 선출시 고려 사항」으로 응답자들은 당선 가능성(24.5%), 지도력(20.8%), 경영마인드(12.8%), 도덕성(11.5%) 등을 중시한다고 응답했다. 「같은 지역출신」을 든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선 주자들의 움직임은 이런 조사 결과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당내 최대 계파이며 영남 지역을 세력 기반으로 삼고 있는 정발협은 『호남 충청을 합해도 1,000만명인데 영남은 1,300만명이므로 TK와 PK가 단결하기만 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이같은 지역감정 편승은 신한국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다 본선에서는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미 후보로 확정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나 경선 통과가 거의 확실해 보이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특정 지역을 세력기반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93년 1월 취임을 한달여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5년후 지역감정이란 말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도록 모든 정책적 배려를 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4년반이 흐른 지금 국민들 사이에 남은 것은 「PK 독식」에 대한 곱지 않은 눈길뿐이다.

「지역 감정」은 이제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까지 굳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차례의 지역주의 선거 바람이 전국을 휩쓸 경우 국가의 앞날은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정치권서 그 극복을 기대할 수 없다면 국민들의 자각 에나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뿐이다.<염영남 기자>

◎대선은 지역감정의 바로미터/7대 대선이후 몰표현상 가시화/87년 13대때 4대권역 할거 구도로

역대 대통령 선거는 지역감정의 경연장이었다. 정치인들이 들쑤신 지역감정은 선거일이면 어김없이 표로 쏟아져 나와 당선자에 회심의 미소를 안겼다.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71년 제7대 대선은 지역감정이 개입한 최초의 선거로 기록돼 있다. 여당인 공화당 유세반은 영남지역을 돌며 『박정희 대통령은 경상도 대통령』이라고 노골적으로 선전했다. 심지어 『야당 후보가 이번 선거를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라고 해 전라도 사람들이 똘똘 뭉쳤으니 우리도 똘똘 뭉치자』고 선동하기도 했다.

야당도 다를 바 없었다. 『호남 사람이 받은 푸대접은 1,200년전부터』라며 『서울 가면 구두닦이나 식모는 모두 전라도 사람이고, 남산에서 돌 던져 차가 맞으면 경상도, 사람이 맞으면 전라도』라고 감정적인 유세를 했다. 개표결과 52%의 득표로 가까스로 이긴 박정희 후보는 연고지 경북에서 76%의 몰표를 얻은 반면 전북과 전남에서는 각각 37%와 35%를 얻는데 그쳤다.

87년의 13대 대선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4대 권역 할거 구도」를 낳은 선거로 꼽힌다. 7대 대선 이후 유신과 신군부 등장으로 16년간 잠복했던 지역주의 정서가 폭발했다. 이때 나타난 대구·경북, 부산·경남, 전라, 충청 지역의 몰표는 88년 13대 총선, 92년 14대 총선 및 대선, 95년 지방선거, 96년 15대 총선 등 선거때마다 각당 득표 예측의 중심 지표가 됐다.

『민정당이 재집권하면 (그쪽을) 그대로 놔두지 마』. 유세가 한창이던 87년 12월11일 당시 이규효 건설부장관이 전북 전주에서 노태우 후보의 유세가 좌절된 것을 두고 행한 발언이다. 개표 결과 노태우 후보는 대구, 경북에서 전국 득표율(36.6%)의 2배 가까운 70.7%와 66.4%를 득표했다. 2위 김영삼 후보는 부산, 경남에서 56%, 51.3%를, 4위 김종필 후보는 충남에서 45%를 독식했다. 3위 김대중 후보는 광주·전남북에서 83.5∼94.4%를 기록했다.

국민을 가른 13대 대선 결과에 대해 어떤 정치세력도 반성하지 않았다. 비극은 92년 14대 대선으로 다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와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맞붙어 영·호남 대결구도가 빚어졌다. 정주영 후보가 「강원 푸대접론」 등을 내걸어 여권의 비호남 지지기반을 일부 잠식했지만 영·호남 대결 구도를 깨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여권의 대구·경북(TK)표 흡수 작전에 『저쪽에 정권 주면 영원히 한 못푼다』는 대응 논리가 나오기도 했다.<이상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