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숨어있던 수천그루 차나무/고려말 일 원정 몽골군이 심어놓은듯/‘동래 차밭골’ 옛명성 묵묵히 입증『만덕사 부근에 엄청 큰 차나무 군락이 있다고?』 부산 차인들은 물론이고 전국 차인들에게는 단연 빅 뉴스다. 부산 북구 만덕동 만덕사 이웃에 살면서 차나무 숲을 발견한 정태중(59·부산 북구 만덕1동 871)씨, 전각가이자 차연구가인 심무용(54·부산 동래구 온천동)씨와 함께 지난 11일 현장을 찾았다. 다람쥐가 뛰노는 키 큰 소나무, 굴참나무, 아카시나무, 시원한 바람에 서걱이는 산죽, 닥치는 대로 칭칭 감고 올라 간 칡넝쿨. 그 사이 사이 시원한 그늘 아래 크고 작은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금정산록에서는 오래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 귀한 차나무다. 어쩌다 한 두그루가 아니라 산비탈 곳곳 수천평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5년전 봄 이 근처를 산책하다 잎이 새파란 어린 차나무를 우연히 발견했는기라』 정씨는 대나무 숲 뿐 아니라 이 일대 3,000여평 비탈에서 2m가 넘는 키 큰 차나무에서 부터 막 새순이 나온 듯한 어린 것 까지 크고 작은 수천 그루의 차나무를 확인했다. 돈이 된다면 닥치는 대로 마구 캐내는 무지막지한 채취꾼 때문에 그동안 입을 다물어 왔다고 했다.
동래 온천장에서 제1만덕 터널을 막 벗어나면 오른편에 「부산기념물 3호」 만덕사터가 나온다. 만덕사터를 지나 금정산 상계봉 병풍암으로 가는 폭 2, 3m의 넓직한 등산로에 들어 선다. 넉넉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소나무 숲, 올려다 보면 우뚝 솟아있는 병풍바위 등 금정산록 중에서도 경치가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힘들여 멀리까지 오를 것도 없다. 오른쪽으로 비탈진 숲속을 내려다 보면 쉽게 차나무를 찾을 수 있다. 잡목으로 뒤얽힌 숲을 헤치고 내려 가면 군락을 이루고 서 있는 차나무가 지천으로 늘어 서 있다. 좀 자란 놈을 골라 밑둥치를 살펴 보면 깜짝 놀라고 만다. 흙을 걷어 내면 흙에 덮인 뿌리 지름이 20∼30㎝나 되는 것도 있다. 이만한 굵기라면 수백년은 족히 됐다는 전문가 분석이다.
계획적으로 차씨를 뿌렸을 리 없는데 사라졌다는 차나무가 어째서 이렇게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는가. 산불이나 남벌로 눈에 보이는 나무의 둥치는 없어졌지만 그 뿌리에서 돋아난 순이 자라 그 씨가 퍼져 군락을 이루게 된 것이라는 게 식물학자들의 추정이다.
부산이 부산포였던 시절 만덕사 동쪽 너머 동래 차밭골에서는 동래부 지역의 수요를 충당하고 수출까지 할 정도로 넉넉한 차가 생산됐다. 만덕사가 언제 건립되고 또 폐허가 됐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이다. 대략 고려 초에 지어진 대사찰로 절의 경계가 사방 4㎞에 이르렀다고 한다. 고려때는 불교를 숭상했던 시기이자 차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때다.
더욱이 만덕사 자리는 범어사와 함께 낙동강 하구 일대와 부산포가 한눈에 보이는 전략적 요충으로 유사시 군사기지가 되기도 했다. 특히 고려말 일본을 공략하기 위한 고려·원나라 연합군의 전진기지였던 곳이다. 1274년 고려의 김방경이 원나라 군대와 함께 1차로 일본 정벌에 나섰다가 실패한다. 1281년 2차정벌에 나섰으나 또 실패하고 만다. 수십년 동안 일본 정벌을 위해 연합군이 이곳에 주둔했으니 몽골인들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차를 조달하기 위해 차밭을 조성했을 것이라는 게 부산 사학자들의 추정이다. 만덕사의 경계가 사방 4㎞라면 동래 온천동 차밭골은 만덕사가 관리하던 차밭이다. 일본정벌 전초기지인 만덕사를 왜구들이 전략적으로 폐허로 만들었다는 추리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차밭골」은 지금 사직구장이 있는 부산 동래 사직동에서 동북쪽 원예고등학교를 지나 온천장 일대와 서쪽인 금정산 산비탈인 만덕사터까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지방 최대의 차생산지였던 차밭골에 지금은 단 한그루의 차나무도 볼 수 없다. 울창한 송림과 차밭 대신 고급 주택가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 서 버렸다. 동래에 차밭이 있었다는 것조차 아득한 얘기가 돼 버렸다. 이런 마당에 차밭골의 차나무가 다시 살아 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랄 일이다.
정씨는 아무래도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눈치였다. 『보도가 되면 귀중한 이 차나무들이 수난을 당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베. 차나무는 뿌리가 곧고 깊게 뻗어 내리는 성질이어서 옮겨 심으면 100% 죽어버릴거여』
그는 『나무를 옮겨 심으려 하지 말고 늦가을 씨를 받아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이른 봄 이 씨를 며칠간 물에 불려 심으면 얼마든지 차나무를 키울 수 있다』며 『부산의 차인들이 이곳 차밭을 가꾸고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대성 편집위원>김대성>
◎알기쉬운 차 입문/건조 보관이 ‘다도’의 첫걸음
차 한잔을 맛있게 마시는 법을 익히는 것이 다도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다도의 중흥조인 초의 스님이 초록한 <다신전> 에는 「차를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 건조하게, 우려낼 때 청결하게 하면 다도를 다하는 것」이라 했다. 구름이나 안개속의 별천지로 여겨지는 다도도 따지고 보면 이렇듯 간결한 기본 원리에서 출발한다. 차를 만드는 것에 정성을 다하는 것은 일단 차생산업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차를 건조하게 보관하는 방법부터 알아보도록 한다. 다신전>
이미 만들어진 차를 변질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수분이다. 잘 건조된 차는 엄지와 검지로 힘을 주어 부비면 고운 가루로 부서진다. 고운 가루가 되지 않으면 습기를 먹어 맛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옛어른들은 장마철에는 아무리 귀한 차손님이 와도 찻단지를 열지 않았다고 한다. 차가 수분에 약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여느 말린 식품과 마찬가지로 차도 바람이 잘 통하는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오늘 날 건조하고 서늘한 곳으로야 냉장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곳에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 옛 사람들은 차도 숨을 쉴 수 있게 숨쉬는 독에 죽순 껍질과 한지를 사용해 보관했다. 오늘날 진공포장이나 냉동포장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그리고 마치 간장이나 된장의 장류를 보관할 때 장독을 열어 햇볕에 쬐듯 오래 보관하는 차는 때때로 화로에 쪼여 차에 스민 습기를 제거했다. 이렇듯 제대로 차를 보관하면 햇차의 싱싱한 맛이 비교적 오래갈 뿐 아니라 제맛이 나는 가을이면 진한 여운을 가진 차로 만들어진다. 진공포장과 냉동포장으로는 맛볼 수 없는 또 다른 차의 세계이다.
진공포장 또는 냉동포장된 차는 개봉과 동시에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칫 방심해 밀봉하지 않으면 2, 3일만 지나도 차맛이 처음보다 크게 떨어 진다. 집게나 고무줄로 단단히 밀봉해야 한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좋은 차를 개봉하면 몇 무더기로 나누어 가까운 차벗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다. 마음맞는 사람들과 따스한 차향기를 나누는 일이야말로 차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인지도 모른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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