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이라는 제 친구의 뉴욕전시회에는 관람객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습니다』 89년 12월, 30세 가량의 한 젊은이가 홍보자료를 잔뜩 싸들고 신문사를 찾아왔다. ◆자료를 유심히 보는 동안 그 청년은 『미국평론가와 미술지들도 매우 호평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작업은 돈벌이와는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계속 투자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먼 길을 찾아온 그 청년은 친구를 도와줄 후원자를 고국에서 열심히 찾고 있었다. ◆기사가 문화면 머리기사로 크게 나가자 화단의 반응은 『그렇게 크게 다뤄질 작가냐』는 것이었다. 그는 끝내 후원자는 만나지 못했다. 5년 뒤 강익중은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을 열고서야 국내의 주목을 받았고, 지난해는 첫 귀국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가 15일 개막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93년의 백남준(황금사자상)과 95년의 전수천(특별상)에 연이은 한국작가들의 낭보다. 이들은 모두 뉴욕에서 작업해 온 작가다. 이 점이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를 앞두고 눈여겨 볼 대목일 것이다. 세계미술은 이미 중심축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겼다. ◆강익중의 작품은 3×3인치 크기의 작은 나뭇조각들 위에 일상적인 소재를 그린 일기형식의 그림 집합체이다. 「오페라를 부른 부처」 등 이번 출품작은 서구적 양식에 동양적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미술에서 캔버스의 개념도, 작품의 표현양식과 주제도 크게 변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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