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치적 사려의 빈곤/최상용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화요세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치적 사려의 빈곤/최상용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화요세평)

입력
1997.06.17 00:00
0 0

◎국민의 편안한 삶 위한 정책수단 선택과정서 깊은 사려할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요즈음처럼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 본적도 없다. 오십보 백보의 많은 정치인 가운데 상대적 우위의 자질을 갖고 있는 지도자를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도덕성과 애국심을 말하지만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 치고 자기를 부도덕하고 애국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치는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즉 시간과 방법의 선택에서 깊은 사려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려는 매사를 깊이 생각한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사려를 뜻한다. 정치적 사려는 정치의 목적이나 이상을 강조하는 덕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질이다. 이를테면 의사가 환자의 병을 고치는 것은 목적이며 여기엔 사려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사려는 환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수단이나 방법을 고안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동법기습처리는 사려가 있었다면 피할 수 있는 선택이었고 만델라의 관용정치는 남아공통합의 목적을 위해 선택한 정치적 사려의 위대한 본보기이다. 정치의 목적이 국민의 편안한 삶에 있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국민을 편안하게 살 수 있게 하는가에 대한 방법의 선택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서 가장 결여된 자질이 바로 정치적 사려가 아닌가 싶다. 김대통령은 야당의 투사시절에 발군의 감을 보였다. 그때는 반독재, 권력쟁취라는 목적이 분명했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의 선택에서도 합리적 계산능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그가 설정한 정책목표는 불확실했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의 선택에서 깊은 사려를 찾아볼 수 없다. 개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북한 관계나 경제살리기를 위해 일련의 정책수단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의 「무사려」는 대통령의 「재임중 결백」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김대중 총재는 그의 경륜과 설명능력이 돋보여 TV토론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다. 그런데 나라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김총재가 대선자금문제로 활력을 잃어버린 김대통령을 향하여 「반독재투쟁위원회」로 임하더니 이제는 국회청문회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국민의 편안한 삶을 위해 사려 깊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평소 정치언어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고 집권여당으로서 국정운영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김종필 총재가 한때 정권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고 지금도 대선자금문제를 끝까지 문제삼는다면 누가 그것을 신선한 선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한총련」은 정치적 사려를 완전히 팽개쳐 버린 집단이 되고 말았다. 한때 우리의 학생운동은 민주화의 담당세력이었고 좌파학생운동도 암울했던 시대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총련은 목표도 납득하기 어렵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 방법은 최악이며 모든 국민을 멀리하기에 충분하다.

3김은 누가 뭐래도 35년이상 이 나라 정치를 주도해온 인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3김은 각자의 경험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총체적 위기에 놓여 있는 나라를 살리는데 앞장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명예나 권력은 그 당연한 보상으로 주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가 잘되려면 「용들」 가운데서 3김을 넘어설 수 있는 지성과 추진력,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 사려를 갖춘 인물이 나와야 한다. 인간은 성숙할수록 사려가 깊어지고 큰 정치인이 되려면 정치적 사려가 몸에 배어야 한다. 꼼수로 정적을 헐뜯는데 익숙한 사람에게 이 복잡한 대한민국, 더욱이 통일한국의 험난한 길을 맡길 수 없다. 경쟁은 당당하게, 결과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