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후 외아들마저 처형/큰딸도 일인 아버지 그리다 사망/농촌서 외손녀 3명과 어려운 삶「훈」할머니 가족사는 현대사가 낳은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훈 할머니의 아버지는 경남 마산군 진동면 면직원이었으며 어머니는 남씨, 언니와 여동생, 남동생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훈」할머니가 42년 일본인에 의해 군대위안부로 끌려온 이후 생사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태다.
「훈」할머니의 첫남편인 일본인 다다쿠마 쓰토무(지웅력·76)씨 사이에서 태어난 딸 카오는 일본인 아버지를 그리며 시름시름 앓다가 94년 어린 딸 넷을 남겨놓고 4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오의 남편은 아내가 7년 넘게 병치레하자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자녀를 3, 4명 낳았다. 결국 카오의 네딸 시나 시니엇 잔니 시눈은 할머니품에서 자라야 했다.
46년 일본인 남편과 생이별한뒤 애타게 남편을 찾아헤매던 할머니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사기까지 당해 전재산을 잃고 어렵게 생활하다 56년 두번째 남편인 캄보디아인과 결혼, 아들 한 명과 두 딸을 낳았다. 그러나 행복은 한순간이었다. 크메르 루즈의 대학살이 한창이던 어느날 아들이 잠시 외출하겠다고 나간뒤 소식이 끊겼다.
이웃사람들은 외국인인 어머니를 대신해 처형됐다고 말했다. 당시 캄보디아인들은 외국인과 그 가족을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몰아 곳곳에서 처형했다. 할머니는 가슴이 끊어지는 아픔을 느껴 연못에 투신, 자살까지 하려했으나 불심으로 마음을 가까스로 추슬렀다.
캄보디아인 남편은 아들이 처형된 뒤 술로 상심을 달랬으나 날로 주벽이 심해졌고 이를 참다 못한 할머니는 그곁을 떠났다. 할머니는 지금 프놈펜에서 북쪽으로 7㎞떨어진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스쿤에서 딸 카오에게서 태어난 외손녀 3명과 살고 있다. 맏손녀인 시나(27)는 남편과 이혼한 뒤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가족을 보살피고 있다.
전기, 전화, TV가 없는 것은 물론 고등학생인 두 외손녀 학비조차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시나는 사망한 어머니가 죽으면서 남긴 보석과 장신구들을 팔아 5백달러를 마련, 파종기때 돈을 빌려주고 가을에 돌려받는 「이자놀이」로 생계를 잇고 있다.
캄보디아인 남편사이에 태어난 두 딸은 이웃마을에 살고 있으며 할머니와 자주 내왕하고 있다.
맏손녀 시나는 『여자의 몸으로 할머니를 비롯한 네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 몹시 힘들다』면서 『그러나 할머니의 한많은 삶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프놈펜=이희정 기자>프놈펜=이희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