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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옹량리? 소그리산?/프란시스코 카란사(한국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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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옹량리? 소그리산?/프란시스코 카란사(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7.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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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작품을 대할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영어로 썼다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을 작품들, 아니 서반아어로만 됐어도 적어도 3억5,000만명이 감동받았을 작품들이 한반도에서만 사용되는 언어로 쓰인 까닭에 그 우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비극이다. 다른나라 사람들이 한국문학을 맛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번역일 것이다.번역을 하다보면 부딪치는 문제 중의 하나가 한국어의 고유명사 표기이다. 현재의 표기법은 소리중심인데 새로 나올 안은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에 따라 표기하는 글자중심이다. 얼핏보면 간단해서 좋을 듯한데 글자와 소리가 다른 경우가 있으니 문제가 적지않다. 작중인물의 이름은 큰 문제가 아니나 왕조나 지명 등의 고유명사는 문제가 심각하다. 「신라」는 지금까지 써왔던 「Silloa」 대신에 「Sinra」로 표기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이미 번역된 작품을 읽은 외국인들은 두개의 왕조가 있었다고 오해하지 않겠는가. 또 문학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속리산」은 「Songnisan」대신에 「Sogrisan」으로 표기해야할 텐데, 작품을 읽고 한국에 온 사람이 「소그리산」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즉시 알아듣고 「속리산」으로 안내해 줄 한국인이 있을까.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청량리에 가면서 겪은 일이다. 택시를 타고 『체옹량리요』라고 말하자 기사는 고개를 갸우뚱대다가 되물었다. 『체옹량리』라고 또박또박 말해도 결과는 매 한가지였다. 서툰 한글로 「청량리」를 써보이자 그때야 웃으며 알아 들었다. 당시 표기는 「Cheongryangri」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몇년이 지나자 다행히도 소리나는 대로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또 과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적겠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서양문자로 표기하는 것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을 위한 것일게고, 그 주요대상은 한국에 오는 외국인 아닌가. 한국인이 서양문자로 한글을 표기하는 때는 여권이름, 외국에 보내는 편지 주소정도이다. 그런데도 「한국인이 한글을 서양문자로 표기하기 쉽게 하겠다」는 생각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를 망각한 것이다.

물론 지금의 표기법도 완벽하지는 않다. 모음의 열린 정도를 표시하는 음성학부호를 쓰다보니 일반 외국인은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고칠 수 있는 문제이다. 세계화를 주장하면서 국제적으로 약속된 국제음성부호를 도외시하고 발음과는 무관한 표기법을 고집한다면 과연 이것이 세계화정신에 맞는 것일까.<외국어대 교수·페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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