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한두 살이 되었을 무렵 사부작사부작 장난이 심하던 애가 녹음기를 만졌던 모양이었다. 어느날 무심코 튼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나의 신경질이 가득 찬 높은 목소리와 아직 말도 제대로 잘 못하던 아이의 어눌한 『잘못했어요』. 그후로도 나는 그 신경질을 고치지 못하고 늘 일을 그르치지만 여러 번 실수를 거듭하며 좀 나아진 것은 가능하면 자초지종을 들어보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 눈높이, 마음 깊이에서 선입관을 버리고.유치원에 다녀오면 이것저것 그날 놀던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가만 들어보니 아이는 말이 되어 마루바닥을 기어다니며 『히힝』소리를 지르고 친구들은 채찍을 휘두르는 마부가 되어 애 등에도 타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절로 화가 났다. 며칠을 참으며 인사처럼 『오늘도 말놀이 했어? 오늘은 누가 말이었어?』 물으면 날마다 아이는 대답했다. 『내가』.
마침내 한 주일의 마지막 날 나는 폭발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다. 『너 바보니? 왜 너만 밤낮 말이니?』 궁지에 몰린 아이는 『잘못했어요. 이제 다시는 말 노릇 안할께요』하여 일단 그 상황은 끝났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근래 밤 잠자리에서 다시 물었다. 『애들이 널더러 말 하라고 했니?』 그러자 애는 아주 단순하게 말했다. 『아니요. 모두가 말이 되고 싶어해서 날마다 가위 바위 보 해서 내가 된 거예요』
아이들 사이에도 지배와 피지배의 개념이 있겠지만 우리의 시각과는 달랐다. 그 뿐인가. 어느 날은 놀이터에서 아이가 불러 문득 돌아보니 아주 기다란 지렁이가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잠깐이지만 나는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아이가 놀라 나를 흔들었다. 그러면서 한 말에 아이를 나무랄 수 없었다. 『정말 큰 놈이라 엄마 보여주려고 깨끗이 씻었는데…』 아이는 지렁이의 말랑말랑한 감촉이 정말 좋다고 했다. 우리 애 뿐 아니라 그런 어린애를 여러 명 보았다. 그 후로 조건부 지렁이 만지기. 『엄마에게 보이지 말 것. 만진 뒤 손을 깨끗이 씻을 것.』 사실 그런 식으로 정리하니 삼십 몇년 지녀온 지렁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어려울 것도 없었다. 자식을 키우며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적용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분주하게 자꾸 더하려하지 말고 이미 가진 선입관을 버리는 것도 아이를 제대로 읽는 방법이다.<옥명희 소화출판사 편집부장>옥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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