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연애, 결혼은 결혼」. 연애와 결혼을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신세대의 현실적 사고방식이 확산되면서 중매결혼이 다시 늘고 있다. 중매산업은 불황을 모르고 마담뚜 등 중매쟁이들의 발길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 청춘남녀들이 쉽게 만나고 연애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왜 다시 중매인가? 중매는 과연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성숙한 선택일까, 아니면 사랑과 인격적 만남이 배제된 조건의 거래인가?10쌍중 4쌍이 중매결혼. 3월 한국리서치의 조사 결과이다. 94년 이후 결혼한 400쌍중 41.5%가 중매로 맺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핵가족화와 개방화 조류를 타고 70, 80년대 들어 점차 감소했던 중매결혼이 최근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중매결혼의 비율은 70∼74년 52.8%였다가 75∼79년 45.1%, 80∼84년 38.3%, 85∼89년 30.8%, 90∼91년 24.2%로 감소추세였다.
왜?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이 개방돼 연애하기가 옛날보다 쉬워졌고, 이성을 만날 수 있는 여건도 좋아졌는데도.
세달 전부터 결혼상담소를 통해 다섯 차례 선을 봤다는 이모(27·여)씨.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외모와 직업, 재력을 갖춘 상대를 쉽게 만나볼 수 있고, 연애결혼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 또 부모와의 마찰도 피할 수 있다. 조건에 맞는 상대가 나타나면 몇달간 사귀어 본 후 결정할 생각이다』
2년전 대학졸업 직후 중매를 통해 결혼한 차모(26·여)씨. 『연애는 상대방의 집안 내역과 환경 등을 무시하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후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설령 잘 안다 해도 헤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중매는 기본적인 조건을 맞출 수 있어 결혼 후 실패율이 오히려 적다. 재산과 조건만 따진다는 이유로 중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지만 이는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내 친구들도 절반 이상이 중매로 결혼했고 대부분 잘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조건만 보지 말고 어떤 사람인지 됨됨이를 우선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중매를 통하면 상대방의 성장환경, 학벌, 집안, 직업 등 외형적 조건을 미리 맞출 수 있으므로 양가 사이의 문화적·경제적 차이로 인한 불화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도 거론된다. 실제로 결혼상담소 관계자들은 『중매결혼한 사람들의 이혼율이 연애결혼보다 절반 가까이 낮다』고 말한다.
중매의 증가는 이처럼 중매의 긍정적 측면이 재평가되고, 아울러 중매산업도 전문화·거대화하면서 중매결혼이 거리낌 없는 결혼방식으로 인식돼 가기 때문이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로 「후보」들의 인적사항에 대한 모든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전국적 체인망을 가진 전문중매업체와 PC통신 중매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중매업자들의 중매방식도 이벤트 중심으로 신세대 취향을 맞춰가고 있다. 미혼남녀, 심지어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이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을 위한 TV의 공개적인 선보기 프로그램도 인기다. 중매를 통한 남녀의 만남이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추세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의식이 현실적·실용주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중매결혼 부활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연애의 여건이 어려웠을 때 연애지상주의는 신조류였고 젊은이들의 가치였다. 그러나 컴퓨터통신이나 전화방, 심지어 누구나 갖고있는 삐삐를 통해서도 남녀가 쉽게 만날 수 있고 눈물 없이 헤어질 수 있는 90년대 후반, 연애는 더이상 최고의 가치가 아닌 것이다. 대신 현실적이고 안정지향적인 가치관이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중매시장」에는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까지 나와 있을 정도이고, 대학 고학년들 간에 미팅과 선을 혼합한 형태의 「선팅」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중매에 대한 신세대들의 사고방식에는 물질만능주의 의식의 확산이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연애는 하더라도 결혼은 조건이 좋은 사람을 고른다」는 생각으로 사랑과 신뢰에 기초하기 보다는 재산과 가문 학벌 등 조건만을 따지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기본 조건」이 월등한 일부 신세대들은 처음부터 억대의 혼수와 지참금 등 혼수리스트를 제시, 「거래혼」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대한YWCA 김미혜 간사는 『처음부터 모든 조건을 갖추고 편하게 살려는 신세대의 사고방식, 단기간내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키고자 하는 욕구 등이 중매문화를 변질시키는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과거 상류층에만 국한돼 있던 「마담 뚜」들에 의한 중매가 최근엔 중산층 이하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정일 상담위원은 『과거 의사, 판·검사, 박사 등 특수계층에 국한됐던 마담 뚜 중매와 과다혼수 요구 현상이 최근에는 전문직, 대기업 사원 등 일반 중산층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어느 마담 뚜의 고백/“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 더 찾지요”/남자는 집안과 학력 여자는 일단 예뻐야/한달 30회가량 주선 두달에 한커플꼴 성사
중후한 용모, 귀부인 차림새의 40대 후반의 여인이 젊은 남녀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중년 여인은 금세 다른 중년 부인 2명이 있는 자리로 옮겨 속삭이기 시작한다. 주말의 호텔 커피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맞선 광경이다. 이 여인의 직업은 「마담 뚜」.
취재팀은 상류층 전문 중매쟁이로 유명하다는 「궁정동 U여사」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U여사 있느냐』고 묻자 U씨는 『나가고 없는 데 누구냐』고 딱 잡아뗐다가 『○○씨 소개』라고 말하자 곧바로 약속장소를 알려주었다. 짙은 색안경을 끼고 나타난 U씨는 기자라는 말에 잠시 당황했으나 사진촬영을 안한다는 조건으로 취재에 응했다.
U씨가 전하는 요즘 중매행태의 변화.
『집안은 좋지만 외모가 떨어지거나 학력이 처지는 사람은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다. 얼마전 현직 장관급 L모씨 측에서 혼처를 구한다고 의뢰해 움직여 봤지만 학력이 워낙 처져 보기도 전에 거절당했다』
남자의 경우 검사, 의사 등 「사」자가 붙어도 집안이 별볼 일 없으면 의뢰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러나 여자는 뛰어난 용모를 갖췄다면 집안과 관계없이 후보선상에 오른다. 남자는 집안과 학력, 여자는 용모인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대학교 졸업앨범이나 사법연수원생 신상명세서 등을 구하는 고전적인 「헌팅」이 이뤄졌지만 이젠 그런 식으로는 후보 물색도 힘든데다 중매를 해도 성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U씨의 중매수첩에는 신랑신부 후보 각 200∼300명 정도가 빽빽하다. 그 중에는 대기업 사장에서 전·현직 장·차관, 국회의원, 검사장급 집안도 있고 전 대통령 조카도 들어가 있다.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있는 사람들을 찾는다. 무조건 재벌 집안이 1등 혼처이다. 대통령도 임기 후엔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하물며 장·차관 집안이나 병아리 판·검사가 무슨 시세가 있겠느냐. 또 기업오너라도 중소기업은 부도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기피대상이다』
대개 신부의 경우는 5, 6회, 신랑은 15, 16회 안에 결혼상대자를 점찍는다.
『의뢰가 들어 오면 기본자료 외에 반드시 집을 방문해 만나 보고 집안 분위기를 살핀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인지를 알아야 그에 합당한 상대를 골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쪽이 만족하는 혼인을 성사시키면 같은 집안 형제는 물론, 친지들의 의뢰가 들어오게 되며, 또 그들이 소개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오므로 성사횟수를 늘리는 길이 장수비결이다.
사례비는 신부측이 신랑에 비해 보통 두배 정도. 정해진 값은 없지만 신랑은 500만원선, 신부는 1,000만원 내외. 또 소개시켜줄 때 마다 양쪽에서 교통비조로 20만∼30만원씩을 받는다. U씨는 한 달에 30회 가량 만남을 주선하지만 결혼성사율은 두달에 한 커플 정도다.
『마담 뚜는 이제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다. 중산층도 결혼을 신분상승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어 비싼 사례비를 감수하면서까지 「뚜」를 찾는다』 그는 장관급 공무원이었던 W모씨의 딸 신랑감을 찾아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염영남 기자>염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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