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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세대와 학노세대/김열규 인제대 국문과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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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세대와 학노세대/김열규 인제대 국문과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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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 나라안이 과외로 들끓고 사교육비로 거덜나고 있다. 과외면 문자 그대로 곁다리로 더부살이 같은 꼴을 하고 있어야 할텐데 실상은 안채 안방격인 공교육을 넘보고 있는 모양이다.하지만 어른들 대다수가 해당되는 학부모는 당사자이기는 하지만 피해자 처지에 있는 걸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럴 수 없다. 스스로 제 목에 비수를 들이 댄 것이고 제 살 제가 깎아 먹은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아이들을 공부 버러지가 되게 먼저 나서서 강요한 게 누구냐고 물어보면 알 일이다. 학생들을 공부하는 노예, 곧 학노가 되게 닦달질한 게 누구냐고 물어도 알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필자는 소학교(초등학교)시절, 하학 후에 집에 돌아와서 책가방을 내팽개치는 재미로 학교 다녔다. 『이 놈의 원수!』 이렇게 소리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기분으로 어깨에 메었던 책가방을 마루바닥에다 내동댕이쳤다. 그게 재미나서 아침에 가방 메고 학교랍시고 갔다. 이건 정말이다.

요즘 젊은 학부형들이 안 믿어도 하는 수 없다. 「학생세대」와 「학노세대」사이의 차이가 그 불신으로 확실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세게 메다꽂았던지, 책가방은 씌우개가 벗겨지고 책이며 공책들이 마당에까지 나가 널부러지곤 해야 겨우 직성이 풀렸다. 엉성하게 싼 빈 도시락이 「쨍그렁 꽝!」소리도 요란하게 박살나는 꼴이 제일로 흥겨웠다.

그럴라치면 할머니께서 젓가락까지 죄 거두시면서 한숨섞어 늘 하시던 말씀. 『오늘도 네 놈 식은 밥 먹였구나!』 그 모습 그말씀,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옛날만이 좋다는 소리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다. 호랑이 담배 피던 때 이야기라고 비웃어도 하는 수 없다. 그래도 학노세대보단 학생세대가 좋았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그 무렵은 대개 그런 식으로 학교 다녔고 또 그런 식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자식이며 손주 걱정들을 하셨다. 점심 도시락이면 식은 밥 아니고 배길 재주가 없는데도 하루 한끼나마 어린 것 더운 밥 못 먹인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니 『숙제 챙겨서 꼭 하여라!』 따위는 요즘 학노세대 어른들이나 식은 죽 먹기로 해댈 소리에 불과하다.

학노세대의 젊은 어머니가 만약 책가방 내동댕이 치는 꼴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할까? 모르긴 해도 얼르고 달래거나 아니면, 다시는 그 따위 짓거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거나 할 것 같다. 점심이기에 더운밥 찬밥 가릴 염은 아예 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빨리 학원으로 내몰 일념에 젖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애들은 그렇게 공부하고 요즘 어른들은 그렇게 아이들에게 마음쓴다. 세상 참 되게도 달라졌나 보다.

학노시대 및 학노세대의 출현은 일차적으로 근자에 들어서 수입이 좀 나아진 부모들의 욕심, 특히 어머니들 욕심 탓이라고 필자는 평소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들 욕심의 내용이라고 해서 간단할 턱은 없다. 우선 아직은 제대로 널리 가정주부들에게 사회화할 기회가 없는 게 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덩달아서 자아를 실현할 기회마저 희박한 젊은 어머니들이란 것을 고려해야 한다. 거기다 모처럼 누리는 시간적 여유와 가정적 부가 욕망의 불에 기름 끼얹는 구실을 다 할 수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그들은 대체로 「화려해진 가정이란 무대의 허무」내지 「화려해진 가정이란 무대의 자아상실 및 자기좌절」을 어디선가, 어떻게 해서든 연출해야 할 다급함에 쫓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오직 한가지 손바닥 안의 구슬, 제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보배인 자식에게 그들 욕망을 덮어 씌운다. 그것이 잔학한 자기보상행위이고 아울러서 자기좌절의 대상행위일 수 있는 가능성은 쉽사리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 그게 사랑이란 대의명분으로 치장되니 물불 안 가리게 된다.

학원과외 않는, 열가지 마음가짐의 지침이란 것을 어느 유관단체에서 내놓았다. 학노세대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욕망 바가지 안 씌우기는 십조목에 앞서 먼저 다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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