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대권후보경선양상이 어느 후보도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채 이른바 「8용 난립」의 형태로 계속되자 주자간 합종연횡의 고리로 권력분산론이 점차 세를 얻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분산론」의 요체는 총리에게 조각권까지 주는 소위 책임총리제가 골간인 듯하다. 「총리가 소속정당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로 내각을 구성토록 하자」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면 사실상의 내각책임제와 다를 바가 없다.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하는바는 권력분산이라는 당위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식의 사실상의 권력구조개편 약속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하는 데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김영삼정권의 탄생배경이라 할 수 있는 3당 합당시 내각제합의각서 파기파동이 이를 잘 웅변하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약속이나 선언이 아니라 기존의 법규정을 준수하려는 의지와 노력이라고 본다. 우리 헌법 87조 1항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못박고 있다. 대통령이 총리의 각료제청권을 존중하면 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총리의 「제청권」은 지금까지 극히 형식적인데 지나지 않았다. 간혹 조각이나 개각 뒤에 우리는 「어느어느 자리는 총리의 강력한 요청으로 관철되었다」는 극히 제한된 총리제청권행사에 관한 후일담을 듣는데 그쳤다.
지난 3월 경선주자 한사람인 이홍구 고문이 제기할 때만 하더라도 이 권력분산론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김심의 향방이 묘연하고, 여기에 「정발협」이니 「나라회」니 하는 외생변수들이 불확실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경선이 혼전양상에 빠져들었다. 당초 가장 회의적이던 이회창 대표까지 결국 이를 수용하게 된 것은 이 「분산론」출현의 배경을 잘 말해 준다. 그러나 이 「분산론」이 경선주자간 합종연횡을 위한 전술적 차원에서 제기됐다는 점에서 일반의 공감을 얻기는커녕 또 다른 정치적 타산놀음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간 우리는 한보비리와 김현철씨 국정개입사건, 대선자금문제 등을 통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집중체제가 초래한 폐해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제도개선 요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권력구조 개편논의는 각종 사건에 휘말린 김대통령정권의 국정장악력 실추로 밀어붙이기가 힘겨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남북이 대치상태인 작금의 형편에서 과연 내각제 등 권력구조의 개편이 당장 필요하느냐 하는 현실적인 회의론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5년단임」 등을 규정한 현 권력구조는 언제고 재론의 대상이 돼야 한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을 떠나 무엇이 국리를 위한 권력구조인지 진지한 논의를 가져야 한다. 경계해야 할 점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논의돼야 할 문제가 정파적 이해와 타산에 의해 제기되고 논의되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