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을 위한 우리민족의 끈질긴 투쟁을 오늘 아침 생각해 본다. 멀게는 조선조에서 있었던 그 무서운 당쟁의 역사에서부터 갑신정변을 거쳐 동학혁명으로 이어지는 처절한 역사의 단면들. 그리고 마침내 3·1독립선언에서 우리민족은 자주독립국가의 국민임을 온 세상에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패배의 쓰라림만을 살아왔을 뿐이었다.드디어 한번 승리의 기쁨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60년 4·19학생혁명이었다. 과욕의 노 대통령 이승만의 하야를 얻어냈으나 수많은 학생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언제나 착한 민중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인가. 1년이 지나 이 민족은 군화발의 억압통치에 신음해야 했으며 말뿐인 민주주의 속에서 다시 살아날 길을 찾아야만 했다.
박정희의 현대적인 군사통치 아래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했던가. 스스로 왕권을 잡고 있었던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은 50년을 뒷걸음질하여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역사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부패한 왕권은 무너지기 마련인 것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의 죽음 이후 이 민족의 역사는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지만 계속되는 군부통치는 끝날 줄 몰랐다.
광주의 민주항쟁을 총칼로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 제5공화국이 군사통치를 계속하게 되었다. 드디어 10년전 오늘, 독재에 항거하는 온 국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분노가 전국을 뒤덮었다. 참으로 장한 싸움이었다. 수많은 민중이 우리와 함께 하였다. 그러나 어리석은 민중은 다시 한번 배반 당하고 말았다. 집권층의 두뇌집단들은 이 소박한 민중의 뜻을 거슬러 사탕발림의 소위 「6·29선언」이라는 것을 기화로 참으로 고귀한 6·10민주항쟁을 무력화하고 말았다. 그후 또 10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과연 우리 모두가 그렇게 외쳤던 민주회복을 얼마나 성취하였는가.
우리는 민주의 세상을 보고 싶다. 10년전 오늘 우리가 외쳤던 함성은 바로 국민이 함께 참여하고 함께 나누는 그래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보기 위한 것이다.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세상, 그것은 바로 군사문화의 본질이다. 또 하나 폭력세계 또는 범죄집단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문민정부를 자칭하는 현 정부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우리는 그 현장을 96년 12월26일 새벽 여의도 국회의사당 안에서 똑똑히 보았다. 「보스」의 명령에 따라 150명이 넘는 충성스런 「부하」들이 어두운 의사당을 점령하여 일사천리로 비민주적인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또 그들 모두가 잘못된 것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법을 실정법이라고 우기는 참으로 웃지못할 세상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이것이 우리 국민이 원했던 민주주의란 말인가.
현 정부는 그 이후 계속해서 거듭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지난번에 있었던 대통령의 사과성명 발표는 무엇인가. 이어지는 대통령의 중대결심 발표는 또 무엇인가. 어느 것이 정녕 대통령의 말씀인가. 9룡, 8룡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보스의 부하들이 아닐까. 보스가 일이 생겼으면 부하들끼리 싸울 일이지 왜 저마다 자기가 잘났다고 온 언론계에 떠들고 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소위 한보사태의 진상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태수라고 하는 기업인이 얼마를 대출받았으며 빌려간 돈을 얼마나 어디에 썼는가 하는 것만 밝히면 다 되는 일이다. 그러나 검찰당국은 아직까지 이 사실 하나도 밝히지 않으면서 모든 수사는 다 끝났다고 말하고 있으니 문제는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야만 한보문제가 끝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가. 누구의 압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의 발표를 종합해 보면 한보가 은행 등에서 빌려간 총액은 7조원에 육박하는 것 같다. 그 가운데서 3조5,000억원 정도가 공장건설비에 사용되었다는 것이고 1조원정도가 이자로 지급되었다고 하는데 나머지 2조5,000억원에 대한 수사발표가 없다는 말이다. 그 엄청난 돈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혹시 외국은행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
이제 한총련사건도 잠시 살펴 보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작년과 금년에 다시 불상사를 일으킨데 대해 누구도 잘 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하여는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이 누구를 보고 그러한 행동을 배웠으며 누가 그러한 사태를 야기시켰는가. 바로 최루탄으로 무장하고 1m가 넘는 몽둥이를 그들 손에 쥐어준 오늘의 우리 군사통치에 익숙한 정치인들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몇년 후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 이들은 우리 모두의 귀중한 보물들이다. 먹고 마시고 놀기만 좋아하는 오늘의 대학문화 안에서 자신의 안일과 편안함을 찾지 않고 이 민족의 역사발전에 무엇인가 한 몫을 해보고자 하는 그들의 뜻을 기성세대는 헤아려야 할 것이다. 또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모두가 참여하는 참된 민주주의 나라가 이 땅에 하루속히 서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시흥동 성당 주임신부>시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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