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0년 경국 새 틀 짤때”/“불경기에 자신감 상실 우리는 지금 복합불황/21세기 대국 위해선 인프라·정보화·인재양성”―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하셨는데 요즈음 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까.
『개인적인 관심분야 보다는 나라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경쟁상대국들은 정부 국민 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데 우리만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발목이 잡혀 몇달째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저의 3년전 베이징(북경)발언도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리 현실을 직시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미리미리 예방하자는 취지였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더군요』
―동서냉전체제이후 세계경제 질서가 급속히 재편되면서 세계경제지도에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회장께서는 이같은 현상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급작스런 냉전체제의 붕괴이후, 세계 각국은 지금 그 동안의 이념대결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경제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EU, NAFTA 등 기득권 보호차원의 경제블록을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개도국에 대해 자유무역주의를 내세워 무차별적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WTO체제를 출범시켰습니다. WTO로 대표되는 신경제 질서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밀림의 법칙입니다. 사자와 토끼가 대등한 위치에서 1대 1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WTO를 미국과 선진국이 경제전쟁에서 챙긴 최대의 전리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WTO 출범후 미국경제가 계속 상승하는 등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WTO가 우리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십니까.
『WTO의 본질을 직시해야 합니다. 자유무역과 호혜평 등을 표방하고 있지만 게임의 주도권은 선진국이 쥐고 있습니다.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기술습득을 어렵게 하고 있고 노동라운드를 통해 노동시간까지 제한합니다. 환경라운드를 통해 우리의 경쟁력을 압박하고 있으며 기업에 대한 금융세제상의 지원까지도 간섭합니다. 아무런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시장까지 개방해야 합니다. 우리 기업들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세계 초일류 기업들과 대등한 경쟁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지금 우리 경제는 경기하강에다 구조적인 경쟁력 약화까지 겹친 복합불황인데 한보사건을 거치면서 자신감마저 상실한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당장 상처를 봉합하고 지혈하는 응급조치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도 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현재의 「경제운용의 틀」이 시대상황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소득수준이 1만불인데 「경제운용의 틀」은 소득 1,000불 수준에나 맞다고 할까요. 후진적인 금융과 법제도 및 관행, 거미줄 같은 규제, 도로 항만 등 인프라 부족, 창조적 인간을 길러내지 못하는 교육, 전근대적인 기업경영 등등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것이 지금의 경제위기입니다』
―요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산업구조상 많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수준이나 기술수준, 인건비 수준 등을 고려하여 21세기 국가의 전략산업을 무엇으로 가져갈 것인가를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이 향후 우리 경제를 지탱해줄 전략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전략산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나가야 합니다. 물론 해당기업도 긴 안목에서 애국심을 갖고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이회장께서는 최근 인프라 확충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시는데 한 말씀 해주시지요.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 물적 이동수단으로서의 인프라는 산업사회의 경쟁력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의 수준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입니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이같은 인프라 부족으로 총원가의 17% 정도를 물류비로 지출하고 있는데 비해 미국은 7% 수준입니다.
지금 우리는 정보사회의 문턱에 서 있는데 산업사회의 인프라 조차도 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국가의 인프라를 통일이후까지 내다보고 웅대한 스케일로 새로 만들어 나가는 한편 국토개조에도 힘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정보고속도로, 통신망 등 정보사회를 맞이하기 위한 투자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21세기에는 통신주권, 사이버주권을 우리 힘으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우리 경제를 돌아보면 문제도 많습니다만, 21세기 한국경제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많은 미래학자들이 21세기는 태평양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21세기에 세계경제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동북아인데 우리나라는 동북아의 관문이자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한민족은 세계에서 몇 안되는 우수한 민족입니다. 과학적 두뇌와 끈질긴 저력을 갖고 있지요. 따라서 우리가 지금 「국가경영의 틀」을 웅대한 스케일로 짜서 현재의 위기만 극복한다면 2020년경에는 소득 10만불 수준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소양도 충분하기 때문에 경제력과 문화력을 함께 갖춘 「21세기의 고구려」로 다시 태어나 세계사의 전면에 부상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회장께서 말씀하시는 큰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할 일은 무어라고 보십니까.
『2차대전후 일본경제가 저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경제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관료주의가 지나치게 발달된 때문이지요. 우리가 일본보다 희망적인 것은 관료주의가 조금 덜 하다는 것인데, 관료주의가 완전히 정착되기 전에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작고 강하면서,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법과 제도 등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짜야 합니다. 행정이야말로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할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하지요』
―그러면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경영의 요소는 사람 설비 자금 기술(정보) 그리고 시간의 다섯가지인데 시간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불리한 입장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요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선진기업보다 「빨리」 그리고 「먼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아내고 개발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세계 표준이 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근로자의 역할은 어떻습니까.
『산업사회가 진전되면서 노동자의 개념은 바뀌었습니다. 노동자를 생산의 수단으로 보는 낡은 시각에서 이제는 「생산의 참여자」로, 나아가 생산과 소비를 겸하는 「프로슈머」로 점차 그 역할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근로자는 과거의 「자본 대 노동」이라는 대립의 개념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자율과 창의를 발휘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봅니다』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국민은 매우 현명합니다. 사회가 선순환으로 돌아서서 모든 것이 잘만 풀리면 우리는 저절로 신바람이 나는 민족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하고 질서회복과 기본 지키기 등 사회인으로서의 본분을 충실히 지켜간다면 멀지 않아 우리 사회는 선순환의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세계 경제올림픽에 나가 싸우는 기업들을 마음으로 격려해 주시면 됩니다』
―21세기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통일경제, 노령화사회, 인재양성 등 우리사회가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가 산적합니다. 먼저 남북 통일경제에는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 할까요.
『남북관계가 계속 긴장상태에 있습니다만 최근의 북한사정을 감안해 볼 때 의외로 남북통일의 실현이 빨라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럴 때일수록 들뜬 감정보다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북통일이 우리민족의 간절한 염원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경제력 수준으로 볼 때 준비 안된 남북통일은 남북 양쪽에 엄청난 시련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기금조성, 시나리오 준비 등 범정부 차원의 마스터플랜을 세워 착실히 준비해 나가는 한편, 남북통일을 경제 재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남북 양쪽이 지혜를 모아야 하겠습니다』
―21세기를 이끌어 갈 인재양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세계는 21세기 인재양성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1세기 국가 운명이 유능한 인재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국가사회를 이끌고 갈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각 분야의 동량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나가야 할 뿐 아니라 기업을 이끌고 갈 차세대 경영자도 적극 육성해 나가야 합니다. 진취적이고 사명감에 불타는 젊은 인재를 발굴하여 미래 우리사회의 주역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 인재양성 기관을 확대해 나가고 인재육성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경제의 미래 비전 및 장기적 대책을 말씀하셨는데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제활력을 되찾고 경제난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경제 살리기에 뜻을 모으고 모든 국력을 경제회생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보사태이후 우리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무력감과 좌절감이 깊어지고 있으므로, 다시 뛰면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Can Do Spirit)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기업들이 신바람나서 경영할 수 있도록 해주고, 국민들이 흥이 나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산업평화 정착이 우리경제에 매우 중요한 과제이므로 노사간에 「상생」의 철학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새로운 백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 후손의 흥망이 달려 있습니다. 모두가 이기심을 버리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해 나가면서 소득 10만불에 걸맞는 「국가경영의 틀」을 만들어 나가는데 지혜를 모아야 하겠습니다』<인터뷰=경제부 배정근 차장>인터뷰=경제부>
□약력
△1942년 경남 의령 출생
△61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65년 일본 와세다(조도전)대 상대 졸업
△6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대학원 수료
△68년 중앙일보 TBC 이사
△79년 삼성그룹 부회장
△81년 한일경제협 부회장(현)
△82년 삼성라이온즈 구단주(현)
△82년 아마레스링협회장
△87년 전경련 부회장(현) 삼성그룹 회장(현)
△89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현)
△93년 KOC부위원장(현)
△96년 IOC위원(현)
△체육포장 체육훈장청룡장 맹호장 IOC올림픽훈장 대한민국체육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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