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동키호테 취급받지만 ‘사회정의’ 향한 뚜렷한 목청/학창시절 ‘회색인’ 멍에 벗으려는 보상 심리도 작용/캐쥬얼슈즈 신고 농구동아리까지… “예의없다” 질책받기도전통적인 보수집단인 법조계도 30대의 바람이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사회의 다른 조직보다 변화의 폭은 좁지만 「높새바람」처럼 보수의 산맥을 넘은 바람의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법조계의 보수성은 「짙은 남색이상의 점잖은 양복 정장에 끈달린 검정색 구두」로 통용되는 외관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 검찰에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 한 토막. 80년대 검찰의 한 최고위간부는 검사들이 끈없는 검은 구두를 신고 보고를 오면 『어른한테 오면서 슬리퍼를 신고 오느냐』고 질책했다. 법원도 예외는 아니다. 사법부에는 「부장판사가 갈 지자로 걸으면 배석판사도 갈 지 자로 걷는다」는 말이 「법언」처럼 내려올 정도로 상사에 대한 권위는 절대적이다. 소위 부장판사한테 찍히면 평생 꼬리표가 붙기 때문에 「DNA의 공통화」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로 부장의 판결스타일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닮으려고 노력하는 보수적 분위기 탓이다.
그러나 이미 변화는 대세가 돼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갈색구두를 신거나 쓰리자켓, 더블양복을 입을 엄두를 못내지만 활동하기 편한 검정색 캐쥬얼 슈즈를 신는 판·검사들도 생겨났다. 요즘은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과감한 디자인의 넥타이도 서스럼없이 매며 멋을 부리는 것이 허물이 되지 않는다. 최근 서울지검에는 30대 초반 검사들을 중심으로 농구동아리가 발족했다. 자칭 「농구드림팀」이라며 일반인들과의 공식대전도 기획하고 있다. 또 법원과 검찰에선 인터넷열풍이 불고 있고 전문분야별 소모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물론 사법부와 검찰에 비해 자유분방한 변호사 사회는 벌써 「스타변호사」들이 즐비할 정도로 법조계의 고답적 틀을 벗어난지 오래다.
이같은 외양상의 미묘한 변화는 「보수의 벽을 허물지는 못하지만 허물려고 시도하는」 30대 법조인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30대 법조인들은 연령별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긴 하지만 어떻든 다른 세대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그들만의 공통적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다. 70년대 중반∼80년대 중반 대학시절을 보낸 이들에게는 사회에 대한 채무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같은 공감대는 소신이 깃든 판결과 수사,활발한 사회참여 등으로 표출되는 경향을 보인다. 법과 정의를 지키는 것이 임무인 이들의 소명의식은 다른 사회조직보다 훨씬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최근 수원지검의 임춘택(39) 검사는 최근 검찰총장을 비롯한 고검장급 간부들이 검찰총장 퇴임후 공직취임과 당적보유를 제한한 개정 검찰청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자 『검찰의 중립을 위해 공직제한이 필요하다』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파문을 일으켰다. 임검사의 행동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항명」으로 비쳐져 검찰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간부들과는 달리 30대이하 소장검사들중 상당수는 『임검사는 동키호테가 아니라 수차례의 고민끝에 취한 행동일 것』이라며 심정적인 동조를 보냈다. 한보사건 재수사에서 김현철씨를 구속시키고 정태수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을 사법처리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검찰드림팀」으로 불렸던 30대 검사들의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권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주류도 30대의 소장변호사들. 30대 법조인들은 「사회정의」에 관한한 뚜렷한 자기목소리를 조직내에서 내고 있다.
TV스타로 널리 알려진 오세훈(35) 변호사는 본업외에 방송출연과 민변, 환경운동연합 등의 사회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는 『30대 법조인들은 학창시절 사회와 정권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참여보다는 입신을 택해 공부한 사람들』이라며 『법조인이면 본업에 충실한 것은 다 마찬가지겠지만 30대 법조인이 사회분야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사회에 진 빚을 갚는 봉사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지법 이모판사는 『법관으로서 30대에 이르면 어느정도 조직에 익숙해지고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몰개성적이고 조직생활에 순치되는 것 같다』며 『법관조직을 떠받쳐야 할 30대로서는 돌출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30대의 독자적인 색깔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지검의 C검사는 『30대의 검사들은 학창시절에 소설속의 「회색인」처럼 생활하며 시험에 매달린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라며 『그러나 사회에서 30대 검사들을 어떻게 보는 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의 30대」와는 다른 방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30대 법조인들 대부분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생활인과 직업인으로서의 갈등일 것이다. 법조계의 경직된 분위기와 과중한 업무는 이들에게 생활인으로서의 여유를 박탈하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있는 듯하다. 한 검사는 『검사도 「검사의 옷을 입은 가장」이다』라며 『폭주하는 일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어느 한쪽은 희생된다는 의미』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또 일부 판검사들은 자기계발의 기회 조차 만들 수 없는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 서울지법 P판사는 『정보화시대에 뒤쳐지는 듯한 불안감에 많이 휩싸이지만 별도로 시간을 내서 공부할 여유는 없다』며 『사회와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집단이기에 사회의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물론 40, 50대 법조인은 30대 후배들의 불만을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나아가 『예의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법조계의 권위추락과 조직에의 역기능을 우려하기도 한다. 검찰의 한 간부는 『우리세대는 조직을 위해 개인생활을 희생하는 것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의무로 당연시 했다』며 『요즘의 30대 검사들의 다양한 개성과 개인적인 풍조가 과연 결집된 힘을 필요로 하는 검찰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법조계는 지난해부터 매년 500명이상씩 사시합격자가 양산되는 급격한 변동을 맞고 있다. 불과 수년후면 30대의 법조인이 범람하는 세상이 되는 것. 법조계 내부에서 오늘의 30대 법조인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법조계의 현실과 맥이 닿아 있다.<이태희 기자>이태희>
◎30대 판사가 말하는 30대 법조인/서울고법 이승령 판사/“틀속에 안주하지 않는 변화와 잠재력의 집단”
『「과도기적 세대」라는 표현이 30대 법조인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올해로 임관 9년째에 접어든 서울고법 형사3부 이승령(35·사시 25회) 판사는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 특수계층으로 통하는 법관의 「30대론」을 조심스럽게 펼쳐놓는다. 법조계가 보수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사회의 다른 집단에 비해 연령별 특성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80년대 이후 급변한 사회와 법조계 내부 변화의 중심을 통과하면서 선·후배 법관들과는 또다른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이 판사의 설명이다.
고교평준화, 5·17계엄확대로 시작된 혼란스런 시대상황 속에서의 대학생활, 사법고시 합격자 수의 증가, 정보화 사회 등의 과도기를 지나면서 넘치는 의욕을 발휘할 기회를 아직 포착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30대는 변화의 잠재력을 안고 있는 집단이죠. 특히 법조계 내부에서는 지방법원 단독판사나 고등법원 배석판사, 특수부나 공안부의 실무를 담당하는 검사로 자리를 잡으면서 법조계의 가장 핵심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집단이기도 합니다』
이판사는 법조계 내부에서의 30대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피력한다. 이판사는 『법조계에 개혁의 바람을 불러왔던 88년 사법파동도 당시 30대가 주축이 됐다』며 『30대 법조인들은 향후 20∼30년간 법조계를 지탱할 집단』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보수화·관료화한 법관 사회에서 30대들은 선배들이 구축해놓은 전통의 틀을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이판사의 지적이다. 『향후 진로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는 때가 30대입니다. 변호사로의 개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하죠. 이 과정에서 법조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고 기존의 관행에 순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판사는 『가두어진 틀 속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30대 법조인의 지향점을 제시했다.<이영태 기자>이영태>
◎30대 법조인이 법조 3륜의 50∼70%/판사 805명 검사 701명 변호사 708명
30대 법조인은 인적구성면에서 법조 3륜을 굴리는 중심역을 맡고 있다.
4일 현재 국내 법조인 숫자는 판사 1,422명, 검사 1,089명 그리고 변호사 3,200여명 등 모두 5,700여명. 이 중 30대 법조인은 판사의 경우 805명, 검사는 701명으로 각각 전체의 50∼70%에 육박한다. 30대 변호사는 판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30%대로 서울변호사회의 경우 회원 2,031명중 708명이 30대이다. 법조인이 되기까지 어려운 시험과정과 2년간의 사법연수원 교육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20대 법조인은 판사 191명, 검사 32명에 불과하고 변호사도 41명(서울변회)으로 파악됐다.
30대가 차지하는 법조계 위치는 검사의 경우 중견 평검사가 대부분으로 검찰에서 이뤄지는 모든 수사를 도맡는 실무진 역할을 하고 있다. 판사는 민·형사단독이나 민·형사배석판사로 경륜을 쌓아가고 있다.
30대 법조인은 법조계 내에서 인적구성이 가장 높은 만큼 평가도 엇갈려 「무색무취하다」와 「다양하다」는 표현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이태규 기자>이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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