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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넘나든 불굴투혼 7만㎞/강동석씨 세계일주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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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넘나든 불굴투혼 7만㎞/강동석씨 세계일주 항해일지

입력
1997.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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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무수히 만나고 상선 충돌위기/부친 사망 소식에 한때 포기결심도강동석씨가 지나온 직선거리 5만7,550㎞, 항해거리 7만㎞의 바닷길은 고독과 공포, 자신과의 싸움으로 점철됐다. 94년 1월 미국 LA를 출항, 같은해 3월 하와이를 거쳐 96년 10월 다시 하와이에 돌아와 한국인 최초의 요트단독 세계일주를 이루고 8일 부산에 마지막으로 안착할 때까지의 항해를 정리한다.

◆LA­하와이

날씨와 바람때문에 요트인들이 나가기 꺼려 하는 한겨울 항해에 나섰다. 91년 태평양일주를 성공한뒤 세계일주라는 목표를 세우고 하루라도 빨리 이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때문이었다. 순조롭게 항해한지 10여일 만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태풍을 만났다. 최고 60노트까지 잴 수 있는 풍속기가 더 이상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과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거센 비가 쏟아졌다. 「과연 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근 사흘동안 악전고투끝에 태풍에서 벗어났다. 이후 하와이까지 순항.

◆하와이­하와이

첫 기항지인 사모아까지는 직선거리로 4,000㎞정도. 예상밖의 무풍지대에 들어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더욱이 엔진까지 고장나 대책이 없었다. 끈기있게 버텨 7일여만에 무풍지대를 벗어났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바람에 애를 먹으며 사모아에 도착하니 「아버지 사망」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2개월여 동안 방황하며 중도포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세계일주 성공이 못다한 효도를 하는 길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항해에 나섰다. 다음 기항지인 피지에 이어 브리즈번까지는 순조롭기만 했다. 흔들리던 마음도 정리가 되어 갔다. 호주 북단 다윈 도착 4일전부터 햄 라디오가 고장나 외로움에 떨었다. 다윈에서 인도양의 코코스아일랜드까지는 상선과 충돌직전까지 가는 섬뜩한 위기상황에 처했다. 신호를 보내고 라이트를 켜는 등 나의 존재를 알렸지만 상선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해 계속 거리가 좁혀졌다. 불과 10여m전에서야 「선구자2」를 발견한 상선이 방향을 바꿔 극적으로 충돌을 모면했다.

모리셔스에서 남아공의 더반에 들어갈때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조류중의 하나로 꼽히는 어갈라스조류를 통과해야 했다. 이어 케이프타운까지는 기상조건이 워낙 변덕스러워 논스톱 항해가 불가능, 이스트런던, 포트엘리자베스, 머슬베이를 거쳤다. 이때의 기상예보는 12시간 앞의 것밖에 얻지 못했다.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에서 카리브해의 그라나다항해는 초반, 순풍에 돛을 달았지만 적도 근처 무풍지대에서 10일동안 거의 속도를 내지못했다. 식수가 바닥나고 식량까지 모자라 갈증과 허기와 싸워야 했던 악조건이었다. 빗물로 목을 축였고 바다위를 달리는 날치를 잡아 구워먹기도 했다. 파나마에 도착했을때 체중은 대서양 횡단전보다 5㎏이나 줄어있었다. 이제 하와이까지만 가면 마침내 세계일주는 이룬다. 하지만 첫 2주동안은 앞바람과 조류, 도착직전에는 다시 끔찍한 무풍지대를 만났다. 엔진까지 고장났다. 우여곡절끝에 하와이에 만 2년7개월여만에 귀환.

◆하와이­부산

조국을 향해 힘차게 돛을 올렸다.

첫 기항지인 남태평양 마이크로네시아 코스레이까지는 첫 일주동안 앞바람때문에 제대로 나아가지 못해 애를 먹은 것을 빼고는 무난한 항해였다. 그러나 여기서 최종 기항지인 일본 오키나와행은 태풍과의 조우를 내내 걱정해야 했던 초조와 불안의 연속이었다. 속력과 항해거리를 평상시보다 높이고 늘렸다. 오키나와 도착 3일전 태풍권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아껴 두었던 캔맥주를 마시며 자축했다.

부산까지는 마지막 난코스. 해군들도 두려워하는 삼각파도와 자주 만나야하고 선박들의 운항이 잦아 충돌 위험도 높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부산에서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에스코트차 나온 대한민국 해군의 「여수함」과 만났고 홍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선구자 Ⅱ호 어떤 배/길이 9.2m 선실 2평반 크루저급

강동석씨와 3년여간 생사고락을 같이한 애선 「선구자 Ⅱ」호는 길이 9.2m, 너비 3m, 무게 5톤의 크루저급 요트.

사용목적에 따라 요트를 분류할때 크루저는 순항을 즐기는 급으로 경기용의 레이서, 상륙용 또는 경기 용인 딩기 등과 비교되지만 「선구자 Ⅱ」는 근해 경기용에 가깝다. 「선구자 Ⅱ」가 강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93년 3월. 태평양 횡단을 이룬후 세계일주를 구상하던 강씨는 자신이 조금 모아둔 돈과 친구, 친지, 교민들의 도움을 받아 「선구자 Ⅱ호」를 구입했다.

선구자 Ⅱ에 설치된 주요장비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28마력의 엔진. 이는 바람이 불지 않아 요트가 나아갈 수 없는 무풍지대를 지날때나 돛을 사용하기 어려운 항구를 벗어날때 주로 사용됐다. 위치표시기, 수심기, 장거리 라디오, 단거리(VHF)라디오 등은 기본장비.

2평반 남짓한 선실은 한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간이침대, 싱크대, 화장실, 사물함, 햄 교신실 등이 빼곡이 자리잡고 있고 쌀, 물 등 식량은 강씨가 예정한 항해일에 맞춰 창고에 채워놓았다.

◎강동석 누구인가/당찬 28세… UCLA 입학후 요트와 인연

「철인 요트맨」 강동석(28·미 UCLA대 휴학)씨는 그간 깍지 못한 덥수룩한 수염을 빼고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169㎝, 65㎏의 다부진 체구지만 선한 눈매는 자신의 삶에 성실하면서 평범한 20대 후반의 청년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바다와 요트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진다. 망망대해에서 마치 한조각 나뭇잎과 같은 작은 배를 이끌고 한국인 최초로 혼자 태평양을 횡단하고 지구를 일주한 기개와 불같은 의지가 배어있다.

69년 5월25일 경기 파주에서 태어난 강씨는 80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간 재미동포. 한국에 살때는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다녀 서울 수색, 마산 월령, 부산 청용초등교 등을 다녔지만 고향은 경남 합천이다. 미국에 건너가서는 열심히 공부한 기억만 있다. 이민 초기 고생하는 부모님에게 보답하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에 책에만 매달려 고등학교때 얻은 별명이 「공부벌레」. 88년 명문 UCLA 사학과에 무난히 입학했다. 요트와는 대학에 들어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 생활 초기, 도서관에서 관심있던 등산 관련 자료를 찾다 우연히 요트 책과 잡지를 접하게 됐다.

책자로만 만족하지 못한 그는 곧 대학 요트클럽에 가입,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태평양 단독횡단에 도전했다. 당시 주위에서는 경험부족 등을 이유로 반대가 심했지만 하루 하루 항해를 통해 경험을 쌓으면 된다고 주장, 그의 뜻을 관철했다.

세계일주 도전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거센 파도도 외로움도 아닌 아버지 강신달씨의 죽음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세계 일주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도전을 격려하던 아버지에게 보답하는 길은 성공적으로 세계일주를 마치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부산=김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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