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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냐 ‘미꾸라지’냐/이병일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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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냐 ‘미꾸라지’냐/이병일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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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들의 전쟁이 한창이다. 신문을 들척이고 TV를 봐도 온통 용들의 이야기다. 때가 때인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하도 많은 용들이 난무하니 정말 어지럽다. 어느 용이 진짜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어느 용이 용이 되다 만 이무기로 추락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이 많은 용들중에서 만능의 여의주를 물고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조화를 부릴 수 있는 용을 찾아내려면 국민들은 있는 지혜를 총동원해야 할 판이다.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에 의하면 용은 낙타 사슴 귀신 소 뱀 교룡 잉어 독수리 호랑이를 부분적으로 닮았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즉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교룡, 등의 비늘은 잉어, 발톱은 독수리, 발바닥은 호랑이를 각각 닮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묘하고 험악하게 생겼는데도 동양에서 용은 서양의 「드래곤」(Dragon)과는 달리 상서로움과 권위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졌다. 하늘과 땅 및 물속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신기막측한 조화로 단비를 내려 풍년을 가져다 주고 백성들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도록 배려하는 것도 바로 용이라고 믿어져 왔다. 용왕신에 대한 민간신앙은 바로 여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백성들은 이같은 믿음에 의지하여 「용꿈을 꾸는 삶」을 추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은 무섭게 생긴 가상의 동물이면서도 이처럼 백성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용의 매력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을 자격여부에 관계없이 「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언론이나 정계에서 편의에 따라, 또 한국에선 대통령의 권력이 그 옛날 「용상」에 앉은 제왕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점에서 이같은 호칭으로 부르게 됐을 것이다. 절대로 자만은 금물이다.

자격여부는 대권주자 스스로가 먼저 자문자답해 봐야겠지만 용이란 호칭속엔 국민들의 기대감이 그대로 담겨있다. 요즘처럼 나라가 어지러울 때 일수록 이는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자그마치 열마리나 되는 용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조화를 부리겠다고 하니 국민들은 어느 의미에선 행복하다고 할 것이다.

대권주자들은 이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정책경쟁 등을 통해 서로 국민들을 위해 보다 뛰어난 조화를 부리겠다고 다짐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면 이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상서러운 조짐(서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추악한 싸움으로 발전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불행히도 요즘 전개되는 상황은 경쟁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싸움의 양상이 짙어지고 있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데는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똑같이 책임을 지고 반성의 자세에서 출발해야 하는데도 이같은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방을 물고 늘어져 끌어 내리려만 하고 있다.

아무리 용이라 하더라도 구름과 물이 없으면 조화를 부릴 수 없다. 한참 진행되고 있는 신문과 TV 합동토론회에서 많이 걸러지겠지만 구름과 물이라고 할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권주자는 용이 되기는 커녕 이무기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나라는 물론 정치판를 혼탁하게 만드는 「미꾸라지」나 「토룡」이 되지 않으면 그나마 국가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중국 초사에 「신룡도 물을 잃고 육지에 오르면 개미의 시달림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용과 미물인 개미를 대비한 이 말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통치자의 말로를 예시하고 있다. 「미꾸라지」처럼 물을 흐리는 대권주자들은 정치의식이 높아진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대권주자들은 용이 못되더라도 이무기라도 되려는 겸허한 자세를 항상 지녀야 한다. 기본 바탕없이 억지 조화를 부리려는 허세와 요행을 버리고 진지한 자세로 국민들속으로 파고들어 귀를 기울이고 비전을 제시하는 등 차근차근 한단계씩 밟아 나가려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이것이 실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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