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씨가 숨진 채 발견된 4일 밤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한총련 의장 강위원씨는 지갑속에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의 흑백사진을 지니고 있었다. 강씨는 「국민앞에 머리숙여」 「눈물로」 등의 표현을 써가며 이씨의 죽음에 대해 깊이 사죄했다. 아버지 사진을 품에 넣고 다니는 26세의 건실해 보이는 한 젊은이의 참회라는 믿음이 생겼다.하지만 강씨의 「비장한」 기자회견에는 「비겁한」 전략이 숨어있었다. 강씨의 기자회견이 진행중이던 밤 11시20분께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학생이 『의장님, 한양대에서 700명의 학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고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강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이 시각 이씨 사망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성동경찰서 소속 수사형사들은 한총련 간부를 만나기 위해 한양대 학생회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총련 의장이 다른 곳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이 수사협조를 약속한 한총련 관계자를 만나러가는 바로 그 시간에 한총련 간부들과 비한양대생이 대부분인 시위학생들이 한양대를 탈출하고 있었다. 잘 짜여진 「작전」이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한총련은 하오 4시50분 출범식을 무기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틀 사이에 2명의 목숨이 희생되는 참사가 빚어진 와중에 출범식을 강행할 경우 또 다른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경위야 어찌됐든 출범식이 연기돼서 큰 불상사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도했다.
그러나 한총련은 이날 밤 12시께 서울대에서 출범식을 강행했다. 『대중조직이 출범식을 갖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몇시간안에 국민을 상대로 말을 바꾼 것이었다.
지난해 연세대사태에서 진압전경 1명이 사망한뒤에도 한총련은 여러차례 평화시위를 약속했었다.
군사독재 시절 많은 국민들은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격려하고 신뢰했다. 그러나 지금 대다수 국민들은 한총련을 불신하고 비난한다. 목적을 위해서는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성 정치인 못지 않은 권모술수와 거짓말을 일삼는 그간의 행태때문이 아닌지 한총련 지도부는 스스로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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