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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아파 죽고싶었어요”/구경하다 한총련 끌려간 한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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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아파 죽고싶었어요”/구경하다 한총련 끌려간 한모군

입력
199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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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파이프 내리치며 “누가 시켰냐”/더 맞지 않으려 허위자백 풀려나지난달 28일 이석씨 처럼 경찰의 프락치로 몰렸던 한모(16·서울 광진구 자양3동)군은 한총련 학생들에게 당했던 고초를 경찰에서 털어놓았다. 그들은 대학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가혹한 「신문」을 했다.

한군이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악몽을 현실로 겪게 된 것은 「대학교에서 큰 소리가 들려 뭔가」했던 그 나이의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수원 고모댁에 들렀다 지하철 한양대역에 내린 시각이 하오 7시30분께. 한양대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마이크 소리에 이끌려 정문을 통해 올라가보니 대학생들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다. 무심히 나무 옆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남자가 다가와 『뭐하러 왔냐』고 물었다. 『구경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하자 대학생은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 나가라』고 말했으나 한군은 계속 머물렀다.

잠시후 또 다른 대학생이 다가와 『뭐하고 있냐』며 같은 질문을 해 『그냥 구경하고 있어요』라고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그 대학생은 한군의 주머니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내 보이게 하더니 한군이 입고 있던 파란색 점퍼를 벗겨 얼굴을 덮어 씌우고 어디론가 끌고간 것이었다. 조그만 방에 도착해서 점퍼를 벗으니 이번엔 또다른 낯선 대학생 2명이 얼굴에 복면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누가 시켜서 왔냐』 『솔직히 말하면 보내주겠다』 『경찰이 얼마주면서 시켰냐』 등의 질문을 연거푸 해댔다. 한군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어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라고 대답했으나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한 학생이 한군의 입에 수건을 물리자 쇠파이프를 든 다른 학생이 갑자기 허벅지 가슴 등 팔 등 온몸을 마구 내리쳤다. 한참을 맞고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기를 수차례, 그 사이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었다. 『여기서 없애버리겠다』는 섬뜩한 말도 들려왔고 의자를 집어던져 부서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더 이상 맞지 않으려면 형들이 원하는 대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 시켜서 왔다. 경찰한테 3만원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어떤 경찰이냐. 이부장이냐』고 묻길래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솔직하게 말을 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이 무서웠다. 나중엔 방에 들어온지 몇시간이 지난지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한군은 허위 자백을 한 후 얼굴에 수건이 씌워진 채 학생들에 의해 한양대 정문밖으로 끌려나간뒤 풀려났다. 한군은 탈진한 채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순찰중이던 의경에게 발견돼 인근 사근파출소에서 이날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경찰의 연락으로 달려온 한군의 아버지(47)는 온몸에 피멍이 든 자식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나이 어린 애를 그토록 잔인하게 두들겨 패놓은 장본인이 대학생이라니 믿을 수 없다』며 몸서리를 쳤다.<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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