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대학은 인재양성 뿐 아니라 문화를 창출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해왔다. 대학은 학문발전의 중심지이고 첨단산업과 군사기술에도 큰 기여를 해왔다. 미국대학에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2차대전 중 레이더와 원자탄이 개발되었고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인근의 대학에서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산업이 좀 더 수준높은 지식을 바탕으로 발전하면서 대학은 더욱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은 한 국가나 사회의 머리와 심장이라고 볼 수 있다.얼마전 아시아에서 도쿄(동경)대학의 수준이 1위이고 우리나라 대학들은 상위권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도쿄대학은 세계 대학중에서는 10위권에도 못들고 서울대학은 몇백위정도라고 한다. 하버드대학의 문리대학장을 지낸 로조브스키 교수는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이 모두 미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얼마전 미국의 한 기관은 일본의 대학이 여러분야 중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했다. 노벨과학상은 미국대학에서 가장 많이 나왔고 이공계 분야의 논문발표수에서도 모두 미국대학이 10위권을 차지한다. 근래에는 유명한 영국의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대학에서도 형편없는 논문을 내고 있고, 필자가 일하는 재료공학분야에서 도쿄대학의 기여는 매우 저조하다.
그러면 왜 미국대학이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가. 물론 국력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대의 로조브스키교수는 영국에서는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가, 일본에서는 도쿄대학이 너무나 압도적인 우위를 지켜, 경쟁될 만한 대학이 없기 때문에 대학 모두가 발전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반면 미국에서는 대학간의 경쟁이 치열하여 하버드대라도 항상 우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대학의 우수성 순위도도 분야에 따라 달리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 클린턴 미국대통령 딸이 하버드대에 입학허가를 받았는데도 스탠포드대를 선택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앞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후진성을 말했는데 여러면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수준은 40년전 미국 대학에도 못미치고 있다. 우리 대학에도 로조브스키 교수의 주장에 적용되는 것 같다. 즉 우리나라 대학들 간에는 분명히 참된 의미의 경쟁은 없다.
운동경기를 생각해보자. 축구팀들이 시합도 안하고 인기투표에 의해 우위를 가린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일까. 우리 기업들이 그래도 사회에서 앞서 나가는 것은 그들이 국제시장에서 다른 나라 기업들과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국제경기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우리 대학들도 정부나 언론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평가가 잘못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대학의 우수성에 대한 평가는 매우 어려우며 평가자의 가치관에 의해 많이 좌우될 수도 있다. 물론 대학입시성적이라든지 교수들의 논문발표수 등은 수치로 나오기 때문에 객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 연구의 수준은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평가가 어렵긴 하지만 우리가 원한다면 꽤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최근 미국대학에서는 교육여건보다는 교육효과, 즉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들었다.
공식화한 제도적 평가보다는 일반인, 정부, 기업, 학계 또는 언론의 일상활동을 통한 평판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이들이 대학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확한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 일반사회의 지원도 국립이나 사립의 차별이 없이, 대학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연구비 등의 형태로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발전했다. 영국정부에서는 대학을 평가하여 1위보다는 2위대학을 집중지원한다고 들었다. 경쟁이 있으면 1위대학이 더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들이 광고의 경쟁, 기득권의 경쟁이 아니라 「교육의 질」경쟁을 통해 발전한다면, 우리 대학들도 문화의 창출과 전파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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