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체실종에 대한 시비는 남아 있다 해도 한보피고인들에게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밝혔듯이 정경유착이라는 오랜 병폐와 악덕기업인 및 그와 야합한 정·관·금융계인사들에 의한 부정부패극에 대해 일벌백계의 단죄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아울러 국민적 분노와 함께 고질청산의 계기로 삼자는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사법부가 두루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다.재판부의 엄단의지는 정태수 피고인에게 15년을, 아들에게도 3년 등 한보부자 모두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만으로 잘 드러난다. 정씨가 누구인가. 지난 91년의 수서택지 특혜분양 사건과 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등 정경유착사건에 가담한 것도 모자라다는 듯 또다시 한보사건을 저질렀던 것이다.
재판부가 이날 판결문에서 『도덕성과 합리성을 결여한 경제성장은 모래위의 누각』이라며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한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국민 모두의 각성을 함께 촉구한 것도 음미할 만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재판부의 그런 의지가 「깃털」 논쟁을 일으켰던 청와대 측근 출신 홍인길 피고인과 대가성 논쟁을 야기시켰던 야권실력자 권노갑 피고인에게도 5년이상의 중형선고로 이어졌을 것이다.
특히 이날 재판부가 권피고인에게 특가법상의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한 것은 국회의원에 대한 첫 사례여서 그 파장이 주목된다. 이날 재판부는 지난 4월17일 전·노 비자금사건 확정판결때의 대법원판례를 인용한 뒤 국회의원의 경우도 대통령에 미치지는 못하나 국정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이같은 1심 판단이 상급심에서 확정될 경우 앞으로 정치인들의 정치자금조달관행은 물론 정치자금법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게 확실하다. 뚜렷한 직무관련성이 없는 광범위한 청탁에 대해서도 단죄가 이뤄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으니 정치자금조달 비상이 걸릴게 내다보인다.
재판의 또 다른 주목거리는 정씨 부자에 대한 사기·횡령죄 인정이다. 이 판단은 기업인들의 무분별한 차입자금 변칙운용과 회사자금의 개인유용 등 잘못된 관행에 쐐기를 박은게 아닐 수 없다.
한보사건 관련 재판대상은 이번의 11명 피고인 외에 「정태수 리스트」관련으로 불구속 기소된 정치인 8명, 그리고 직접 관련은 없다지만 김현철 피고인 등의 비리 관련 재판이 남아 있다. 이번 판결결과로 미뤄 리스트 정치인들도 엄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겠다.
돌이켜보면 지난 1월말 한보철강부도로 촉발된 한보사건은 정피고인 등 11명에 대한 기소와 9차례 공판을 거쳐 이제 4개월여만에 1심단죄가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이걸로 한보사태의 앙금이 국민들의 가슴에서 진정 가라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안개속에 묻힌 「몸체」가 그 의문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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