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장치이다. 국민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체의 중요한 결정을 직접 내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오랜 이상이지만 오늘날의 대규모사회에서 이같은 이상은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하다. 직접민주주의의 이상과 대규모사회의 현실을 조화시키는 장치가 선거인 것이다. 모든 국민이 함께 모여 결정을 내리는 것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대표자를 선출하여 과정을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선거의 의의는 국민의 의사를 가능한 한 최대로 반영하면서 국정의 비용은 절감하는 데 있다.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보면 과연 선거가 민주주의의 짐을 덜기 위한 장치인지 의심스럽다. 대통령선거를 위한 당내의 예비선거라고 할 경선을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과정에서 국정은 사실상 방치되고 국민들의 관심 또한 이 천변만화의 드라마에 쏠려 있다. 일찍이 그레고리 헨더슨이 한국정치를 가리켜 모든 것을 흡입해 들이는 소용돌이(Vortex)에 비유한 것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정치를 돕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짐이 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장치이다. 따라서 그로 인한 각종의 비용은 민주주의가 치러야 하는 응당의 비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비용은 어디까지나 더 나은 국정을 위해 치르는 비용이다. 따라서 선거가 국정의 표류를 가져와서는 안된다. 거의 매년이다 싶게 열리는 선거때마다 국정이 표류한다면 왜 선거가 애시당초 필요했는지 그 본래의 존재이유를 망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란 국민의 뜻을 국정에 좀 더 잘 반영시키기 위한 것이다. 국정을 더 잘하기 위한 선거가 국정을 망친다면 선거의 참뜻은 상실된다.
앞서 총선을 앞두고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에어버스 등 총 15억달러의 수출을 성사시켰다. 프랑스정계의 일각에서는 다분히 선거를 염두에 둔 과시적인 행차라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선거운동이라면 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거의 본질적인 의의에 비추어 정당의 후보경선 또한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경선은 당내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관행에 비해 확실히 진일보한 것임은 백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당내 경선이 정책이 아니라 계파간의 합종연횡으로 일관된다면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정당이라는 밀실에서 대의원들과의 거래와 흥정에 의해서 후보가 결정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경선과정의 어느 시점에선가 국민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선거는 거의 일상적인 일이 되어 있다. 그만큼 소모적인 측면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끊임없이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 대결하고 있고 일반유권자는 예비선거의 과정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후보를 내세운다. 그럼으로써 선거의 비용이 상쇄되고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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