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조찬식(39·문헌정보) 교수의 무선호출 번호를 누르면 팝스타 에릭 클랩튼의 히트곡 「Tears In Heaven」이 흘러 나온다. 곧이어 어눌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메시지가 뜬다. 『어, 또 삐삐가 왔네. 어휴 난 왜 이렇게 삐삐가 자주 올까. 차라리 삐삐없는 곳으로 가버릴까. 1번을 누르든지 2번을 누르든지 마음대로 하세요』「점잖은 교수」가 삐삐를 차고 다니는 것도 흔치않은 일인데다 음성메시지까지 이렇게 나오면 대개의 사람들은 실수로 엉뚱한 번호를 눌렀다고 착각하기 일쑤다. 그래서 조교수의 삐삐에 얽힌 일화는 가지가지다.
얼마전 TV사극 「임꺽정」이 한창 인기를 끌 때 조교수는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딘줄 알고 삐삐를 쳤느냐. 또 쳤으면 냉큼 번호를 누를 일이지 왜 이리 꾸물거리는 게냐』라는 호통을 녹음해 두었다. 성북구청 직원중 한 사람이 구 문예진흥자문위원이기도 한 조교수에게 업무협의를 위해 삐삐를 쳤다가 기겁을 했다. 나중에 내막을 들은 직원들이 박장대소했다는 후문이다.
최근에는 「첫사랑편」도 있었다. TV드라마 「첫사랑」의 주인공 이름 「찬혁」 「찬우」가 조교수의 이름 「찬식」과 흡사하다는데 착안했다. 「저희 찬식, 찬혁, 찬우 형제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배경음악은 드라마 삽입곡인 「보고 있어도 보고싶은」과 「존재의 이유」였다.
조교수가 삐삐를 갖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 대학본부 국제홍보협력실장직을 맡으면서 연구실을 비우는 일이 잦아지면서 「불편해진」 제자들이 선물한 것. 제자들은 재미삼아 조교수의 삐삐를 열어보기도 하고 『선생님 삐삐 캡이예요』라고 호응하거나 『이번 멘트는 너무해요』라는 투정을 남기기도 한다. 김희정(21·문헌정보2)양은 『선생님은 어떤 의미에서 기존의 벽을 허무는 선구자』라며 『어떨땐 아빠같고 어떨땐 친구같아 너무좋다』고 말했다.
조교수의 파격행동은 삐삐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엔 문헌정보학과 학생 서넛이 대학로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조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조교수 왈 『세미나가 있어서 나왔는데 재미가 없어 빠져나왔다. 우리 술마시자』. 조교수와 제자들의 예정에 없던 술파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학생들이나 동료교수들과 워낙 격의없이 지내다보니 학교 인근 식당가에서도 조교수는 스타다.
그러나 조교수는 수업만큼은 철두철미하다. 1학년 전공인 「정보와 사회」과목의 경우 한학기동안 내야 하는 리포트만도 10여편. 조교수는 제출된 리포트를 꼼꼼히 읽고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에 도장을 찍은 뒤 점수를 매긴다. 도장 하나에 ±1점씩이다. 출결, 지각도 철저히 챙겨 총점표를 공개한다. 채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학생과 함께 다시 채점하기도 한다.
조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밝고 명랑하지만 뭔가를 스스로 찾고 도전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는 부족하다』며 『「해주세요, 사주세요, 써주세요」식의 의타심은 곤란하다』고 충고했다.<최윤필 기자>최윤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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