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빚더미에 눌려 허덕이던 대학교수 부인에게 파산선고를 내린 것은 빚 때문에 인생이 파탄상태에 직면한 사람에게 채무를 면제해 주는 인도주의적인 조치이다. 선진국에선 일반화된 이 제도(자기파산)는 본인의 신청을 받아 채무액이 재산보다 많거나, 재산도 변제능력도 없는 사실이 인정될 때 내리는 예외적인 구제장치이다. 파산선고를 받으면 금융거래를 금지당하고 취직에 제한을 받는 등 공·사법상 불이익을 받게 되지만, 변제능력 없음이 확인되면 소정절차를 통해 파산선고 이전과 같은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채무자에게는 인생파탄을 막아 주는 좋은 제도이지만 채권자측에서 보면 일방적으로 채무자만 보호하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남에게 진 빚은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사회정의에 반하고, 신용거래 질서에 해악이 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이 제도에는 악용의 소지가 있어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기파산 신청이 많아지면 시비와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든 빚을 떼어먹으려는 악덕채무자가 교묘히 재산을 빼돌리고 이 제도를 이용한다면 선의의 채권자들은 변제를 법에 호소할 길마저 잃게 된다. 재산과 수입이 없는 사람이 신용대출제도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거나 사채를 얻어쓰고 이 제도를 악용하도록 조장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법원측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기파산죄를 적용해 형사처벌을 할 수도 있고, 복권을 불허함으로써 영원히 파산자로 살아가도록 하는 제도적 방지책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능적인 악용자를 걸러내는 장치로는 미흡해 보인다. 우선 파산신청자의 재산과 변제능력 조사수단이 너무 제한돼 있다. 서면심리와 신문, 채권자와 관계기관에의 조회 정도가 그 수단인데 이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62년 파산제도 도입후 첫 사례인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보완책을 충분히 연구하고 운영에도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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