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아침 김영삼 대통령의 「말씀」을 TV로 시청하면서 필자는 바로 4년전 93년초, 95%라는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 속에 이 정부가 첫 출범할 때에, 혼자서만 가만가만히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던 일을 되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에 필자는 바로 그 「압도적인 지지」 자체가 어쩐지 불안했던 것이다.지난 4년동안 문민정부의 개혁은 주로 겉치레에 머물렀을 뿐, 진짜배기 「구조」의 쇄신에는 처음부터 아예 엄두조차 낼 수가 없었다. 문민정부가 첫 출범할 때의 여건이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였었다. 전직 대통령을 줄줄이 구속하고 중형을 안겼을 정도로 나름대로 개혁에 열을 올렸지만 끝내는 김대통령 자신의 가장 아끼는 친자식마저 같은 구속자 대열에 끼워넣지 않으면 안됐을 정도로, 기 정치권 구조와 관행은 깊디깊은 수렁이었고 완강했던 것이다.
김대통령도 이날 담화에서 우리 정치풍토의 지난날의 관행을 소상히 지적했지만 92년 대선자금의 경우도 그 연장선에 있음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뉴질랜드는 80년대 초부터 대담한 행정개혁을 단행하여 전세계의 이목을 모았다. 특히 8만8,000명의 중앙관료를 일거에 3만4,000명 선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퉁기 총리 말대로, 같은 당내 반대파를 「설득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그들을 죽인 것이다(I Killed Them)」 설득하려고 들었다가는 저들 기득권 세력에 되레 말려들기가 십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생전의 인기가 아니라, 죽은 뒤 묘비에 적힐 몇자를 기대하고서만 단행할 수 있는 비장한 결의를 요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현황은 이른바 「정태수리스트」와 관련된 정치인 8명을 기소할 방침임을 밝힌 검찰의 해명에 잘 드러나 있다. 「나머지 24명은 선거기간에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으나 현행 정치자금법에 처벌 조항이 없어 기소하지 못했다…」 요컨대 나머지 24명은 한보로부터 돈은 받았지만 대가성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모양인데, 이따위 법리나 따지는 소리를 우리 국민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공직자들에 대한 관련법이 엄한 것은 이 나라 삼척동자까지 다들 알고 있거니와 스웨덴의 경우를 보더라도 수도 스톡홀름에 있는 오직방지연구소는 스톡홀름상공회의소, 스웨덴산업연맹, 스웨덴소매업자연합의 3자 공동출자로 지금부터 무려 70여년전인 1923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뇌물죄와 관련된 스웨덴의 형법규정은 정치가나 공무원은 물론이고 민간인에게까지 적용된다고 한다. 그 누구건간에 피고용자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서 일정한 정도를 넘어선 향응이나 선물을 받으면 뇌물죄에 저촉된다. 주고 받는 양자간에 그런 쪽의 대가성 가능성이나 개연성이 내재해 있음이 객관적으로 인정만 되면 처벌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강 뇌물로 인정할만한 위험선은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5만원 내지 16만원 선이며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허용금액이 훨씬 낮고 더 엄하다. 그러니 우리네처럼 정치헌금이라나, 떡값이라나, 그따위 시대착오적인 괴이한 용어는 처음부터 설 자리가 없다.
이번 대통령 「말씀」도 각기 처해있는 입장에 따라 받아들이는 양태에 차이는 있겠지만, 기왕의 정치권 비리의 원천을 큰 테두리로 짚어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제는 「대선자금」이니 뭐니, 기왕의 정치권 관행에서 야기되었던 고리타분한 먼지 구덩이 속을 정치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훌훌 털고 어서 빠져나와 12월 대선을, 그리고 21세기를 향한 우리 정치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관련법 마련에 모든 슬기를 모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이 법의 마련에는 여야간의 정치인끼리만 몇몇이 모여서 꾸무럭댈 것이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들도 같이 참여하여 처음부터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소설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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