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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왓슨연구소 최초 동양계 여성연구원 이윤경 박사(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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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왓슨연구소 최초 동양계 여성연구원 이윤경 박사(한국인터뷰)

입력
1997.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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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시대 여성엔 큰 기회의 장”/테크놀로지 자체보다 실생활 활용이 더 중요/여성창의력은 큰 자원/인종·성편견 이중고 극복/주부로 6년간 주경야독/좌우명은 적극적인 사고이화여대가 개교 111주년을 맞아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빛낸 동문 12명을 초청, 30일 「세계속의 한국여성:전망과 전략」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을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윤경(47) 박사는 세계적 과학기술연구기관인 IBM 토마스 J.왓슨 연구소 최초의 동양계 여성연구원. 왓슨연구소에서도 핵심부서인 인터넷 멀티미디어 네트워킹파트의 책임자로 있다. 그는 『테크놀로지 자체보다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생활화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미래사회에서는 섬세한 생활감각에 바탕을 둔 여성의 창의력이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에게서 정보화시대 여성의 역할과 전망에 대해 들었다.

□대담=이성희 여성생활부 기자

―과학기술분야의 세계적 두뇌들이 모여있다는 IBM 왓슨연구소 유일의 동양계 여성 연구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최초」라고 말하는게 맞습니다. 80년대말 까지만 해도 유일했지만 90년대 들어 중국계 여성이 몇명 들어왔지요. 왓슨연구소에 연구원이 2,000명 정도인데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전문 연구원 1,000여명중 여성은 5% 남짓합니다. 그중 동양계는 4∼5명 뿐입니다』

―왓슨연구소에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제가 책임연구원으로 있는 인터넷 어댑티브 네트워킹(Internet Adaptive Networking)분야는 서로 다른 기능의 컴퓨터가 동질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쓰는 사람들도 인터넷을 통해 전혀 불편없이 의사소통이 되도록 환경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미국에서도 최신 통신기술분야로 꼽히고 있습니다』

―동양계 여성으로 책임연구원의 위치에 오르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인종과 성 차별이라는 이중고를 헤쳐나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고급두뇌들이 모여있는 왓슨연구소에도 차별은 여전하니까요. 미국인들은 다양성을 미덕으로 여기면서도 동양여성에게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조용하고 순종적이며 하위직에 어울린다는 것이죠. 이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보면 「이중적인 인간」으로 치부합니다.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일에는 철저하게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고 남보다 조금 더 많이, 깊게 연구한다는 자세로 일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더군요』

―동양계 여성이라는 희소성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 부분은 없습니까.

『왓슨연구소에서는 내가 동양계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동양여성으로서의 감수성이 인터넷 통신을 더욱 섬세하게 하는 지금의 직무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요』

―대학에서 가정학을 전공하신 분이 어떻게 컴퓨터분야의 전문가가 되셨습니까.

『72년에 남편과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양쪽 집안이 그리 넉넉지 못해서 남편이 먼저 공부를 하고 저는 일을 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4개월간 학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습니다. 그때 수료성적이 뛰어나다고 영어를 썩 잘하지 못했는데도 곧바로 김블백화점 프로그래머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6년동안 계속 더 좋은 업체로 스카웃이 되어 다녔지만 전공이 아니다보니 연구원이 되기는 힘들더군요. 마침 81년에 IBM 왓슨연구소에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채용되었는데 IBM에는 우수한 프로그래머에게 박사과정까지 지원해주는 장학제도가 있었습니다. 6년동안 낮에는 연구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수업이 없는 밤에는 딸아이를 챙기는 노릇까지 하면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가정을 가진 주부로서 만학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공부가 재미있어서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습니다. 컴퓨터 공부는 쉬웠는데 영어로 쓰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한국에 있을때는 말 잘한다는 소리를 꽤 들었는데 영어로는 그만한 의사소통이 안되니까 무척 답답했습니다. 언어때문에 같은 내용이라도 남의 세곱절 네곱절 공을 들여야했으니까요. 미국에는 탁아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딸을 키우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이화여대에서 『정보화시대의 도래는 여성에게 엄청난 기회와 도전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보십니까.

『물론입니다. 90년대초만해도 정보통신관련 신기술의 개발이 관련업계의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신기술을 어떻게 우리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것인가, 즉 신기술의 응용분야를 개발하고 설계하는 것이 신기술만큼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여성의 장점이 발휘됩니다. 살림을 직접 해서일까요, 여성들은 생활감각이 뛰어나고 섬세한 감수성이 있습니다. 신기술을 생활속에 어떻게 응용할 것인가에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성이 정보화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정보통신분야는 매우 급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조금만 뒤처져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IBM이 95년초 인터넷에 대한 세미나를 열었을때만 해도 전문가들조차 절반 정도는 인터넷의 상업성과 미래의 영향력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불과 2년뒤인 지금 그런 논의는 아예 자취를 감췄습니다. 미래 정보통신사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합니다.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생활속의 소소한 정보들을 상품화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짜내서 사업가로 변신할 수도 있습니다』

―정보화 사회가 정보접근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들을 더욱 소외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남는데요.

『지금 미국에서는 대기업 중역들만을 대상으로 3∼4일간 집중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교육을 시키는 고액과외가 성업중입니다. 중역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흔히들 「컴퓨터통신의 개발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세대차이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조기교육을 받지못한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에 익숙해지는데 힘들어 합니다. 컴퓨터는 더이상 사무기기가 아니라 가정생활의 필수품입니다. 한국의 PC보급율이 770만대라고 합니다. 웬만한 가정에는 한대씩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주부들이 컴퓨터를 자녀들에게만 사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25년동안 외국생활을 하면서 여성으로, 사회인으로 삶을 지탱시켜준 좌우명이 있습니까.

『「별을 쏜다면 달도 맞출 수 있다(If you shoot the star, you may hit the moon)」라는 미국속담이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에는 크든 작든 결실이 있다는 것이지요. 긍정적인 사고만큼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날이 달라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떻습니까.

『강연회에 몰려든 젊은 여성들을 보며 국제화시대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고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87년 연구원이 된 후 각종 세미나 참석차 거의 매년 한번꼴로 한국에 왔습니다만 올해에야 여유있게 둘러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놀랍게 발전한 것은 좋은데 상가의 간판이나 신문 방송 할것없이 영어를 너무 많이 쓰더군요. 영어가 세계화의 척도인양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세계화는 자기 고유의 특성을 제대로 보존하면서 그것을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 외국어를 습득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약력

▲44년 서울 출생 ▲63년 경기여고 졸업 ▲67년 이화여대 가정학과 졸업 ▲68년 건축설계사 출신의 사업가 김순권씨와 결혼 ▲72년 유학차 도미 ▲81년 IBM 토머스 J.왓슨연구소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입사 ▲87년 IBM 장학생으로 뉴욕 폴리테크닉대에서 컴퓨터공학박사학위 취득 ▲95년 IBM사 발명성과상(Invention Achievement Award) 수상 ▲현재 IBM 왓슨연구소의 인터넷 어댑티브 네트워킹(Adaptive Networking) 연구팀 책임연구원 ▲「비직사각형 반도체칩 설계를 위한 방법체계」 등 11개 미국특허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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