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란 사법부 고유권한이고 오로지 법정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요즘 우리 주변을 조금이라도 정신차려 살펴보면 지금은 나라 전체가 어느새 거대한 재판정으로 변해버렸음을 알고는 스스로 놀라게 된다.그 재판이란 것도 한보사태로 비롯되어 대선자금문제에까지 이르는데 장장 5개월이 걸렸고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없다. 그 이전의 특별법에 의한 5·6공 및 5·18단죄까지 보태면 우리는 최근의 소중한 몇해를 재판정에서 흘려 보낸 셈이 된다.
지금 국민들의 심사는 마냥 처연하고 울분에 차 있으며 공허하기까지 하다. 한때 그처럼 따르고 기대를 걸었던 지도자와 정치권,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엮어내는데 앞장섰다는 재벌을 피고석에 함께 앉혀둔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검사가 되어 날이면 날마다 준열한 논고를 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재판의 또 다른 특징은 재판관이 따로 없다는 점일 것이다. 국민들이 논고를 하면서 판결도 직접 내리게 된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라지 않는가.
나라 전체가 거대한 법정으로 변해버린 이번 재판의 또 다른 특징은 재판 절차 자체가 피고인에게 너무 온정적이라는 것이다. 강제수사를 통해 증거를 대고 기소하며 법조문을 준열히 나열하는 통상의 재판절차후에 허용하는 대신 오히려 피고인에게 최후진술권부터 먼저 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온정적 재판이라 할 만하다.
최후진술권이란 게 뭔가. 형사소송법상 피고인과 변호인이 최종으로 진술하는 고유의 권리이지만 어디까지나 검사의 수사와 증거조사 및 법률적용에 관한 의견을 들은 다음 부여하는 게 원칙이다. 일반 재판에서 법관은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듣고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작량감경을 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흔히 최후진술권을 피고인의 마지막 기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의 거대한 국가법정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30일 드디어 밝히기로 결심한 대선자금에 관한 천명이란 것도 어찌보면 최후진술권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선자금이란게 과거로부터의 고질인 정경유착에 따른 원죄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정치권이면 여야 가릴 것 없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구석이 없지 않다 하겠다. 그렇다고 한보사태의 부정 덩굴을 캐다 막판에 맞닥뜨린 벽이 바로 대선자금인데 절대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그 원죄적 업보를 함께 극복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대통령에게 미리 부여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지금 나라에 주인이 없다는 소리가 팽배해 있다. 빈집만을 골라 내시경과 액정모니터라는 최신장비로 문고리를 딴 뒤 집을 털어가는 신종수법의 빈집털이가 극성을 피운다는데, 주인없는 나라가 맞을 위기란 그 정도로 결코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재벌들의 잇단 부도에 이은 금융대란설, 구한말을 닮아간다는 국내외 상황에 대한 한탄, 모두 일손을 놓고있어 국정의 공동화도 빚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두루 국민들을 조여오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여론조사결과는 준엄하다. 법대 교수들의 60% 이상이 대선자금 의혹 전면수사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대선자금 공개거부를 수용 못한다는 의견도 80%를 넘었다고 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문민정부」 아래라면서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일까.
지금 국민들의 모든 기대와 시선은 대통령의 담화에 쏠려 있다. 과연 대통령이 스스로의 실정과 국정공동화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고 뛰어넘을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며, 한보사태와 대선 자금의 진상을 얼마나 성실히 밝혀 정상참작과 작량감경을 가능케 할 단초를 열어줄 것인지 가슴 조이고 있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노의 가운데에서도 피고인에게 최후진술권부터 먼저 부여할 정도로 온정적이며 나라 걱정을 하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이다. 솔직한 참회와 함께 극복의 의지와 청사진을 담아냄으로써 마지막 기회를 선용하길 바랄 뿐이다. 최후진술은 법관을 감동시켜야 뜻이 살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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