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화에서 대중성은 마치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같이 중요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요소로 작용한다. 90년대 들어 전과 두드러지게 달라 보이는 문화양상은 공연예술, 신간서적, 옷차림, 유행, 음식문화, 대중매체의 프로그램, 뉴미디어 등등의 분야에서 과거와 다른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다.대중성은 흔히 통속성의 개념과 동일시하여 고급예술의 속성에 반하여 저급한 개념으로 여기는 수가 있다. 그러나 대량생산, 대량전달, 대량소비를 배경으로 이제 대중문화의 영역은 어떤 종류의 문화라도 어느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중문화는 그 소비성이나 통속성때문에 경멸받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숨을 쉬며 살기 위해서 벗어날 수 없는 문화적 대기권을 이룬다는 말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대중문화의 대중은 수적으로 많은 사람이 개입되어 있다기 보다는 사회의 모든 계층이 개입되어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결국 대중의 이야기라는 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레이몬드 윌리엄스가 『만일 「대중」에 대해 고정된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그들의 참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했을 때 이는 대중을 실제 살아있는 자신들의 삶의 맥락에서 보려하지 않는 이론가들을 향한 말이지만 문화생산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믿고 싶다. 대중은 쓰레기 문화들을 그저 받아 넘기기만 하는 아편중독자가 아니다. 대중은 꿈, 추억, 열등감, 고뇌, 욕망, 고통, 회한 등을 가지고 있는 나와 같은 구체적 인간이다. 대중은 문화 소비자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고 싶어한다.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속에 새로운 대중성이 놓여 있다.
비전문가에게도 쉽게 전달되는 전문성, 형식과 내용에서 대접을 주는 느낌, 현재와 과거의 연결성,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 매체의 다양성 및 복합성, 묻어둔 기억의 회상, 아픈 상처의 위로와 용서, 신파 또는 멜로드라마적 정서, 유통과 유행의 감각, 모성애적 포용성 등의 개념이 이미 대중성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인물과 역사인식의 르네상스적 현상, 삶의 개체성을 엮어 관계의 총체성을 이루는 네트워크, 지식인 엄숙주의의 파괴와 교육의 변화 등에서도 그런 현상을 읽을 수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연출가>한국예술종합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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