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과천 경마장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하나 있었다. 옛날의 마상무예를 재연시켰고, 특히 격구까지 새롭게 연출한 것이다. 이날은 토요일이어서 경마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경마 중간중간에 이것이 연출되었다. 비록 경마객들이 마권에 정신이 팔려 차분하게 이를 감상할 여유를 갖기 어려웠고, 또 신문방송들도 그다지 크게 다루지는 않았으나, 그 재연의 의의는 결코 적다할 수 없다.원래 우리 조상들은 벌판과 산길을 말을 타고 활쏘면서 돌아다녔다. 말을 많이 길렀고 말타기가 널리 행해졌으며 무인들은 말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거나 창과 칼을 휘둘러서 찌르고 베는 무술에 능했다.
또 말등에서 각종 재주를 부리는 마상재는 나라의 자랑거리여서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 일행은 으레 이들을 데리고 가서 일본사람들에게 큰 구경거리로 보여주곤 하였다. 마상무예는 조선조 말기까지도 무과 과거의 시험과목이 되어왔다.
격구도 오랫동안 성행된 경기였다. 말을 타고 두 패로 갈라져서 작대기로 공을 쳐 골(구문)에 넣는 경기인데 말하자면 한국판 폴로 경기이다. 격구는 신라 고려로 이어져 왔고, 고려의 무신정권 시대에는 실권자 최이가 자기 이웃집 수백호를 헐어서 격구장을 만들어 며칠씩 그 경기를 즐겼을 정도이며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도 이를 좋아했다. 조선 초기까지 궁중에서는 단오에 으레 이 경기를 시행했으며 무과에서도 시험과목이 되었는데, 중기 이후에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조 중기부터는 마필의 사육이 줄어들고 기마의 풍습이 시들었으며 상무의 정신도 약화되어 우리는 문약한 전통만 물려받은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과천 경마장에서 마상무예를 재연한 것은 그런 점에서 뜻깊은 일이라 할 만하다. 마상무예의 재연은 작년에도 시행해본 듯하나, 격구는 금년에 처음 시도한 것이다. 97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원회가 한국마사회측에 격구의 재연을 간곡히 종용하고 자문도 하였는데, 마사회가 적극적인 노력을 쏟아 많은 인원과 경비를 투입해서 성사가 된 것이다. 옛날 복장과 도구까지 마련하여 훌륭하게 재연이 되었는데 이는 전통의 새로운 인식에도 도움이 되고 관광거리로도 제공될 것이 기대된다.
역시 없어진 전통으로 유상곡수의 연회가 있다. 이는 구비진 개울 물에 띄운 술잔이 천천히 흘러가는 동안에 시 한수를 짓는 연회이다. 옛날 중국에서 유래했지만 신라와 일본에서 모두 유행하였으며, 경주에는 포석정의 유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일본에는 아무 유적도 없지만 매년 이 연회를 재연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귀중한 유적을 그대로 방치만 해둘 수는 없다. 옛날 사람들이 지은 시가 이른바 향가였는지 또는 한시였는지 분명치 않으나, 오늘날 우리는 여기에서 시조의 시회를 재연할 수 있을 것이다.
경북 경주시에서도 이를 고려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화유산의 해」조직위원회가 이를 정식으로 종용하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물흘리기와 기타의 방책을 모색중이며, 금년에는 안되더라도 머지않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양반 사대부들이 정자 등에 모여 한시의 시회를 가졌던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이제는 특정부류의 사람들에 한정됨이 없이 지방에서도 널리 운치있는 시조 시회의 풍습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옛날 선비들은 한문을 가지고도 시를 지어서 웬만한 사람들은 문집을 남겼는데, 하물며 자기 글로 시회를 갖는 운치있는 기풍은 조성되어 마땅할 것이다. 이 경우 경주의 유상곡수 연회는 그런 전통의 대표적인 행사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없어지고 끊어진 문화 전통이라고 해서 어느 것이나 다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회와 시세의 변천에 따라 쇠퇴하고 없어지는 것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다만 사라져 가는 옛것 중에서 우리에게 아직도 활용될 수 있는 것을 찾아 살려 낸다면 그것은 새로 도입, 또는 창조하는 것보다 훨씬 친근감을 갖고 쉽게 체질화할 수 있는 문화전통이 될 것이다.<문화유산의해 조직위원장>문화유산의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