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는 결코 음습한 곳이 아니라 개발에 따라 쾌적한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인천국제공항 관련시설 예술의전당 문화거리 등 우리도 본격 지하도시시대를 예고하고 있다「땅밑을 열어라」
갈수록 땅이 부족한 서울의 공간활용을 위해 지하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도심재개발, 노후건물 재건축, 자투리땅 이용, 도시계획 변경, 고층화·고밀도화…. 토지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각종 방안들이다. 그러나 수십년 계속된 도시화로 인해 이들 방안도 이제 한계에 온 것이나 다름 없는 만큼 지하공간을 적극 개발, 앞으로 계속될 도시팽창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적극적인 지하공간 개발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지하는 결코 음습한 곳이 아니다. 땅위의 소음과 진동, 악취가 닿지 않고 늘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제공해 안정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 『지하공간은 어둡고 축축하다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이 닿지 않았을 뿐, 개발하기에 따라 쾌적하고 편리한 생활공간으로 꾸밀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건축법상으로도 용적률과 건폐율 제한이 적용되지 않으며 인접 건물에 지장이 없을 경우 대지면적의 90%까지 개발할 수 있어 토지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까지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실제 삼성 선경 롯데 등 대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사내에 지하개발팀을 조직하거나 자사 건물 지하를 확충 개발하는 등 지하개발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다. 또 정부 당국도 지하공간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본격적인 「지하도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하공간은 67년 12월 서울시청앞 새서울 지하상가 완공에 이어 74년 8월 지하철 1호선 개통으로 현대적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후 계속된 지하철건설로 생겨난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지하상가나 도로 주차장 등이 나타났으며 을지로 지하상가와 명동·잠실 롯데백화점 지하상가는 대표적인 지하개발 사례로 꼽힌다.
1호선 개통후 20여년이 지나면서 그동안 지하개발의 걸림돌로 여겨져온 비싼 건축비용과 지상개발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도 해소돼 개발 비용의 경우 지상 건축에 비해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데다 건축기술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하를 업무와 거주, 문화·휴식 시설을 고루 갖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기가 더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개발되고 있는 지하공간은 인천 국제공항. 여객터미널과 주차장 건물로 구분되는 국제공항은 터미널 지하에 25만평의 공간을 확보, 2000년 완공을 목표로 지난해 11월 공사에 들어갔다. 지하 1, 2층에는 수하물 처리창고와 지하철역, 5만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상가시설과 위락시설이 들어선다. 여객과 지하철 환승객을 위한 쇼핑센터와 식당가 외에도 수영장과 체련장, 각종 의료기관 등이 입주한다. 또 주차장은 5,000여대의 차량을 지하 1∼4층에 수용하고 지상은 공원으로 조성, 시민 휴식처로 활용된다. 이런 지상공원·지하주차장은 선진국에서 흔히 활용되는 지하개발 방식으로 서울 종묘공원 주차장이 성공사례다.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과 중앙산업빌딩을 잇는 지하도로 공사도 한창이다. 삼성측은 새 지하도로를 기존의 「동방플라자」와 삼성본관 연결로와 접속해 시민들의 발길을 끌겠다는 계획이다. 길이 47m, 폭 12m 가량의 새 도로에는 상가는 들어서지 않고 분수대와 벤치등만 설치돼 도심 지하 휴식공간으로 사용된다. 삼성그룹은 앞으로 시청앞 지하도와 연결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예술의전당과 서울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을 잇는 길이 500m의 지하 문화거리 조성 계획도 검토가 끝난 상태다. 땅밑에 문화·예술거리를 조성하겠다는 예술의전당과 서초구청이 주도한 이 계획은 95년부터 추진됐으며 진로 아크리스 백화점의 지하광장 계획과 맞물리면서 탄력이 붙었다. 서초구청 측은 지하거리에 문화·예술전문상가를 조성, 일대를 지상과 지하가 조화를 이룬 예술타운으로 가꿔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방자치제 실시이후 대구와 부산 등 지방 대도시 지하공간 개발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현재 진행중인 대구 반월당역 공사는 연면적 2만여평의 지하 4층 시설을 건설하는 것. 지하 1층은 70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 2층은 지하 보도 및 대규모 지하상가, 지하 3층은 역무 부대시설, 4층은 지하철 승강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부산도 각 백화점의 지하층과 지하철 역을 잇는 지하도로와 지하철 역에서 인근 도로로 지하상가를 확충 연결하는 공사를 계획중이다.
지하공간 개발에는 아직도 경제적·기술적 걸림돌이 많다. 또 지상처럼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삼우설계 이강주 연구실장은 『지하공간은 일단 개발하면 원상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법 정비를 거쳐 민관 합동의 장기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며 『우선 공원과 학교 부지 등 국공유지 지하를 시범개발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건물 고층화에 따라 지하시설도 6∼9층으로 깊어지고 있다』면서 『건물 지하층을 서로 연결하고 지하철역 등 지하 주요시설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무리없는 지하개발의 방향』이라고 밝혔다. 도시기능이 점점 복잡해 지고 지상 생활환경이 날로 나빠져 최소한 지상 도시 기능을 분산하고 지상 환경 악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땅속은 더 이상 버려둘 수 없는 공간이 돼 가고 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일본 ‘지하 100m’를 개발한다/살인적 땅값·잦은 지진 등 영향/지하도시 연구·기술 세계 최고/30m까지 공간은 이미 포화상태
일본의 지하공간 개발 열기는 대단하다. 기술개발과 연구 수준도 세계 정상 수준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지하공간을 우주와 해양에 이은 제3의 미개척지로 간주, 연구와 실험을 계속해 왔다. 도쿄(동경) 오사카(대판) 등 대도시의 토지부족과 비싼 땅값을 해결할 최선의 대안으로 지하공간 개발에 매달려 왔다.
현재까지의 개발프로젝트나 연구는 주로 지하 50m 아래의 「대심도 지하」를 대상으로 해 왔다. 그러나 최근 100m 아래의 「대대심도 지하」의 도시개발 등 야심찬 개발사업이 시야에 들어와 있다.
일본 대도시의 경우 지하 30m까지의 지하공간 개발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지하철 노선을 비롯, 가스 및 통신설비, 상하수도관 등 도시 기반시설이 모두 땅속에 들어 가 있다. 또 대도시 고층건물도 안전성을 이유로 지하 20m정도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비싼 땅값과 인구 밀집이 지하공간 개발을 부추겨 온 것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잦은 지진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특별한 고려가 대심도 지하개발을 재촉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80년대 후반에 대심도 지하공간의 이용을 놓고 열띤 논쟁을 거쳤다. 현재는 대심도와 대대심도에서의 지하도시 개발과 철도 및 고속도로 건설 등 실현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다.
도쿄에는 지상 건축물과 연계해 지하 공간을 활용한 건축물들이 많다. 이중 86년 준공된 일본 국회도서관 신관은 대표적인 지하공간 개발사례로 꼽힌다. 이 건물은 지상 4층, 지하 8층으로 지어져 땅밑 31m까지 들어 가 있으나 지하에서도 지상과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채광이 훌륭하다. 자연의 빛이 지하 8층까지 닿도록 건설돼 있어 지하에서 책을 보는데 아무런 불편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일본의 건설회사들이 90년대 초반부터 검토해 온 다양한 21세기형 지하도시 개발프로젝트는 이제 구상단계를 지나 타당성 검토 단계에 있다. 땅속 200m깊이의 10만평 정도의 부지에 40층 높이의 지하도시를 건설할 경우 건설비는 지상에서 같은 구조물을 지을 때보다 2배 이상이 들어 가지만 땅값을 물지 않아도 돼 투자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 건설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본은 활발한 지하공간 개발과 병행, 부작용 점검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자연재해는 물론 지하생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 불안, 마구잡이식 지하개발이 초래할 폐해 등에 다각적으로 대비하고 있다.<도쿄=조희제 기자>도쿄=조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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