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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진국 반가운 징후들/정진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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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진국 반가운 징후들/정진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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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하오 차없는(3시간 동안) 서울 대학로 거리에서 「세계연극제」 D―100일 축하행사가 시민들의 열띤 호응 속에서 다채롭게 펼쳐졌다. 이날은 2회 광주비엔날레 100일 전이기도 한 날이었다. 그러고 보면 올해 9월에는 그밖에도 국제음악제와 2회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 등 다양한 장르의 풍성한 국제 예술행사들이 줄을 잇게 된다. 바야흐로 한국이 21세기를 앞두고 문화선진국가로 발돋움하려는 반가운 징후들이 아닌가 여겨지는 대목이다.그중에도 9월1일부터 10월15일까지 45일간 서울 전역의 공연장과 경기 과천 일대에서 베풀어지는 세계연극제는 사상 최초,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축제가 될 것이다. 근 100편에 달하는 국내외의 우수 연극, 무용, 음악극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세계연극제는 특히 제27차 국제극예술협회(ITI)총회와 더불어 개최된다는 점에서 한층 의미를 더하고 있다.

ITI는 문학의 PEN클럽과 같은 위상을 지닌 국제기구로서 2년마다 총회를 여는데 95년 카라카스총회에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인 연출가 김정옥씨가 세계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세계 100여개 회원국가를 거느리고 있는 ITI는 총회와 더불어 세계연극제를 개최하는데 한국은 이미 93년 뮌헨총회에서 개최권을 따냈었다.

그로부터 4년간의 준비를 거쳐 이제 100일 앞으로 다가선 세계연극제는 그 규모와는 달리 순수예술행사답게 예산규모가 마이클 잭슨 한 사람을 불러오는 경비에도 훨씬 못미치는 30억원 정도로 짜여졌다.

비단 세계연극제 뿐이 아니라 특히 올해에 집중적으로 열리는 이같은 국제예술행사들에 대하여 그 개최 의의와 목적을 묻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 질문은 곧 문화예술이 나라발전에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세계연극제만 놓고 보았을 때 대답은 두가지이다. 첫째 문화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자는 것이다. 한국은 동양 3국 가운데서 일본과 중국에 비하여 문화적 측면에서도 훨씬 덜 알려져 있다. 이번 세계연극제는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대외에 과시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될 것이다.

둘째 보다 중요한 목적은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6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 갇혀 국민들의 삶의 목표가 잘못 설정되었다. 그 결과 커다란 양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는 하나 그 폐해 또한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온 국민이 오로지 부와 권력과 출세와 성공만을 삶의 목표로 추구한다고 했을 때 이 과정에서 국민은 승자와 패자로 나뉠 수 밖에 없으며 극소수만이 승자의 대열에 서고 절대 다수의 국민은 좌절과 절망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경제가 발전한다 해도 국민 개개인이 모두 원하는 만큼의 부를 누릴 수는 없다. 여전히 절대 다수는 박탈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이미 우리 경제는 천문학적 선거자금, 사교육비, 호화 사치성 지출 등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 있다.

이 모두가 잘못 설정된 삶의 목표에 기인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은 바로 우리의 병든 가치관을 치유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문화예술은 국민 모두가 평등하게 나눠 가질 수 있는 공공의 재산이다.

이미 세계는 하나가 되어 있고 앞으로의 사회는 더욱 상호의존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자기집 대문 안에 재산을 쌓아두는 일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우리들 삶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대문 바깥에 공공의 재산을 늘려가는 것만이 행복추구의 지름길이 될 것이며 문화예술은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올해의 세계연극제를 준비하면서 한편으로 우리들 마음을 크게 짓누르는 것은 작금의 혼탁한 국내 정치상황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극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영역다툼에 온나라가 열병을 앓고, 이틈에 문화예술은 또한번 뒷전에 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또 하나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너나없이 해외의 상업연극을 직수입하는데는 앞장 서면서 정부가 막대한 국고를 들여 지원하는 순수예술행사를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의 시대를 넘어 문화의 세기를 여는 일이 이토록 험난한 것인가.<한국연극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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