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가부장적 사회구조 원인/제도적 예방책·교육 활성화해야남편에게 십년간 구타를 당해온 윤선화씨가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잠자던 남편을 살해했다는 최근보도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은 자신의 딸을 집요하게 구타하는 사위를 살해했던 이상희 할머니 사건이후 다시 한번 가정폭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두 사례는 공교롭게도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지속적인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가해자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사회가 가정폭력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러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92년 보건복지부 보고에 따르면 남편의 61%가 결혼이후 한번 이상의 아내구타 경험이 있었다. 또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92년)에서는 남편의 50.5%가 결혼 이후 한번 이상 아내를 구타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필자가 실시하고 있는 가정폭력 전국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25%정도가 지난 1년간 배우자폭력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아동학대 역시 25%를 넘는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전국 가구수를 900만으로 볼 때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약 200만가구에서 지난 1년간 1번이상의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아동이나 배우자의 사망수치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학계나 시민단체에서는 비율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정폭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서 선천적인 공격적 성향, 알코올, 어린시절의 폭력경험 등 다양한 원인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되는 원인은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사회경제적 스트레스이다.
가부장적 사회제도는 그것 자체가 가정폭력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문제라기 보다 왜곡된 가부장적인 가족구조가 가족갈등과 가정폭력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배우자구타나 자녀구타와 같은 가정폭력을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거나 가정내 갈등을 해결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의 하나로 여긴다. 사회적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가장일수록 가정폭력을 돌발적인 분노의 표출방법으로 또는 단기간의 문제해결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보고자란 아동은 폭력을 하나의 문제해결 수단으로 배우게 되고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룬 후 이를 행사할 위험성이 높다.
그러나 폭력의 결과는 문제해결이 아닌 갈등의 심화이다. 직장에서 의견충돌이나 갈등이 생겼을 때 상급자가 하급자의 뺨을 때렸다고 하자. 이런 경우 두사람 간의 갈등과 고통이 해결되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정 밖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우리는 가정 내에서는 허용하고 있다.
사실상 가정폭력은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에 앞서 가족구성원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든다. 가족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가정폭력은 가족의 복지, 즉 행복한 삶을 저해하는 최대의 장애요인이다. 가정폭력은 치료되어야 하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치료될 수 있다. 따라서 폭력가정을 사전에 예방하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러한 치료와 예방이 보다 효과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해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가정폭력방지를 위한 법률제정이 추진되었으며 그 결과 지난해말 국회에 「가정폭력방지 특별법」이 상정됐다.
그러나 반년을 넘어서는 지금까지 이 법안은 상정만 되었을 뿐 한보사태 등의 여파로 실제적인 법률입안과정이 진행되지도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법제정이 이루어질 때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개발과 사회복지사나 정신과의사 등 전문인력의 실제적인 개입이 가능하다.
가정폭력은 사회적 병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가정폭력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가정을 생활터전으로 살아가는 개인의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폭력을 추방하는 일에 모두가 나서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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