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싸가지 없는 사람이 한국 국민을 「들쥐」라고 입을 놀렸다. 그 「들쥐」가 한국어 그대로 들쥐인지, 들쥐와는 다른 종류의 짐승을 뜻하는 지는 훨씬 뒤의 궁색한 변명일 뿐이었다.80년대 벽두 신군부가 나라의 권력 일체를 틀어쥐던 그 폭압의 시절에 그 군부세력을 드러내놓고 응원하던 수작이 한국 국민을 들쥐로 모독 당하기에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날 다시 한번 한국 국민을 그렇게 말한다면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닌가. 이를테면 그런 말에 어떤 이의도 제기할 수 없는 절대 공포가 바로 유신체제를 고스란히 상속받은 신군부 시절의 그것이 아니었던가.
바로 그렇게 국민을 맹종으로 몰아가며 들쥐로 만든 무단의 근원에 박정희가 있다. 나는 박정희의 유신체제와 그 뒤의 신군부 시절을 일관된 실감으로 살아온 사람중의 하나이다. 그 실감이란 어느만치 고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내가 새삼스럽게 박정희나 그 이후의 통치자에 대한 실없는 증오 따위에 고착됨으로써 시대인식의 발전을 감정적으로 억누를 생각은 없다. 그때는 그때이고 오늘은 틀림없는 오늘이다.
그래서 박정희라는 대상을 사사롭게 떠올리면 그가 극적으로 세상을 떠난뒤의 유족의 이산과 방황에 한가닥 연민이 고이지 않을 수 없기까지 하다. 아니 부인이 피투성이의 참변을 당한 이래 나는 그의 정신적 방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구호대상국의 남루한 수혜자인 한국을 고도경제성장의 나라로 만드는데 앞장선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는 서민적이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의 서민적 공감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국민에게 순종만을 요구했고 끝내는 입법 사법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재벌에까지 그의 권력의지를 반영시켰다. 도리어 이승만시대의 민주적 국가구조까지 샅샅이 그의 통치권의 장치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래서 입법부는 아예 3분의 1의 임명의원과 그의 뜻이라면 모든 것을 통과시키는 절대 다수석으로 이루어졌고 대법원장실에는 역대 대법원장의 사진 대신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어야 했다. 그 시절의 감옥은 양심수로 초만원을 이루었고 말 한마디로 10년을 선고받는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시절의 박정희를 예찬하는, 그의 엄청난 과오까지 왜곡되어도 좋다는 향수에 젖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긴급조치 1호에서 9호까지, 그것으로도 모자라 국가보위에 관한 특례법까지,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단 말인가. 과연 그는 이 땅을 가난에서 건져올리는데 그 자신의 몸을 바쳤다. 그런데 이같은 「가난 이기기」는 오로지 그가 혼자서 이룩해낸 것이 아니라 온갖 가능성을 다 발휘한 국민의 위대한 업적임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박정희를 말할 때 한국 국민의 부흥상이 간과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 실체의 진실을 가리는 것이 된다.
그리고 본 즉 박정희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유보한채 우리는 그 이후의 격동 가운데서 살아왔다. 바로 이같은 현실이 어떤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나 어떤 욕구에 의해서 심정적인 우상을 그리워하는 구실을 만들어 주는지 모른다.
나는 이승만을 좋아하든 박정희를 좋아하다가 전두환을 좋아하든 그것은 그들의 절대권력에 속해있던 회고일 경우 막을 생각이 없다. 아니 그들의 시대를 기성세대로 살지 않은 신세대의 탈정치적 성향이 도리어 정치적 우상으로서의 박정희를 지지하게 되는 것도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역사를 복제함으로써 오늘의 난국에 대한 혐오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그 생각이 얼마나 퇴영적인가를 일깨워야 한다. 그런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영웅사관이란 또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지금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와 그 가치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적인 무방비상태의 정신적 착란도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라는 과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대한 미래지향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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