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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 잃은 「리스트」 기소(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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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 잃은 「리스트」 기소(사설)

입력
1997.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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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리스트」는 한때 대선자금 문제와 함께 가공할 폭발력을 지닌 한보사건의 또 다른 정치적 지뢰밭으로 여겨져 왔었다. 그리고 그 지뢰밭에 대한 철저 수사와 단죄야말로 정경유착관행 근절은 물론이고 불법·부도덕 정치권정화의 확실한 계기가 될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해 왔다.하지만 검찰수사결과는 축소와 짜맞추기 혐의가 짙은 용두사미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리스트에 올라 있고 거액수수사실도 확인된 대선후보 등 소위 거물정치인들은 거의 빠져 버렸다. 그리고 전직의원이나 원외위원장 등 비중이 낮은 인사가 대부분인 8명만을 여소야대 비율로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뚜렷한 수사의지나 기소원칙을 찾을 길도 없어 국민적 기대만 또 한번 무산되어 버렸다 하겠다.

물론 검찰이 국민적 기대와 정치적 파장, 그리고 법리와 법감정의 틈바구니에서 무척 고심했음을 우리도 모르는 바 아니다. 당초 범죄구성요건이 없다며 대상에서 빼뒀던 리스트 수사가 재개된 것 자체가 여론에 밀린 탓이긴 하지만 교체된 검찰수사팀의 실적으로 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기소여부를 가리는 잣대라고 밝힌 「대가성」 문제에서부터 뇌물액수와 기소의 형평성문제, 문정수 부산시장에게 적용한 사전수뢰죄의 법리문제 등등 실제 기소과정에서 지적할 수 있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 이날 검찰은 선거직전 선거자금조로 받은 것은 제외하고, 국정감사 등을 앞둔 시점의 청탁뇌물이나 강요에 의한 뇌물 등은 대가성 있다고 봐 기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결과 억대의 돈을 받은 정치거물들은 빠지고 천만원대의 돈을 받은 야당원외위원장은 기소되어서야 검찰기소의 원칙과 형평성을 인정받을 도리가 없다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야법조계에서는 리스트에 오를 정도의 정치인이면 대가성을 모두 인정,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국민들의 법감정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검찰의 이번 리스트 정치인 기소도 정치적 외압앞에 흔들린 기소편의주의의 또 다른 남용사례라는 국민적 소리를 듣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그러고 보면 한보사건 자체도 외압의 몸체를 못 밝혀내고 거물정치인 단죄조차 성사시키지 못한채 용두사미로 이처럼 끝나 간다. 결국 우리 모두의 짐으로 남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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