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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김원형·안선국씨 일가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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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김원형·안선국씨 일가 기자회견

입력
1997.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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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부터 쌀배급 거의 끊겨”/주민들 “쌀을 주든지 김정일 물러나든지” 불만 고조/지원식량 군용전환설·황 비서 망명 ‘체포’로 알기도한국판 「보트피플」 김원형(57) 안선국(47)씨 두 가족 14명은 22일 상오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생사의 기로를 헤맸던 탈북과정과 극심한 북한의 식량난 등에 대해 생생히 증언했다.

―탈출경로는.

▲안선국=『김씨의 동생인 인형씨로부터 2만달러를 받고 김씨와 밤을 새워 탈출계획을 짰다. 경비가 심한 신의주 국경분소에서 나와 김씨의 두 아들 등 일부만 배를 탔고, 나머지는 경비가 허술한 평북 동천부두에서 승선했다. 남북간의 해안은 북한 경비함들이 많아 일단 중국 산둥(산동)성 부근 공해지역으로 항해한 뒤 남한으로 선수를 돌렸다. 항해 도중 라디오로 서해지역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져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북한함정에)잡혀죽으나 난파해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남진을 계속했다. 물이 새는 뱃바닥을 걸레로 막는 등 위기의 순간에 태극기를 단 군함을 발견, 귀순의사를 밝혔다』

―쌍둥이 동생이 미국에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김원형=『아들의 생존여부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90년 북한에 온 이모가 형님에게 어머니와 동생이 미국에 살고있음을 알려줬다. 형님은 나와 생각도 다르고 형님의 사위가 군에 근무해 비밀이 샐까봐 탈북계획을 숨겼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 사실을 알았나.

▲김원형=『남한 방송을 듣고 알았다. 라디오는 인형이가 북한에 왔을 때 선물로 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북한주민은 황비서가 망명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체포해갔다고 여기고 있다』

▲안선국=『지난달 8일 당에서 당원교육을 하면서 황비서 탈출에 대한 입장을 밝혀 알았다. 잘 먹고 지위도 높은 황비서가 「튈」정도이니 국가체제에 큰 혼란이 있거나 나라가 망하는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이 나돌았다』

―해외에서 보내는 식량이 주민에게 전달되는가.

▲김희성=『주민들 중 미국과 한국 등 선진국에서 주는 식량이 군용으로 들어가는데 왜 자꾸 보내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안보내는게 낫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주민들 사이에는 군사력이 강한 북한이 두려워 미국이나 한국이 식량을 지원해준다는 얘기도 나돈다』

―북한가정의 실제 식량사정은.

▲김화옥=『3년전까지는 한달에 60㎏의 쌀을 배급받았으나 그 뒤로는 거의 배급받지 못했으며 햇곡식이 나오는 9, 10월에 고작 쌀 10㎏을 받았다.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아 번 돈으로 매일 1㎏의 밀가루를 구입해 죽을 끓여먹었다. 냉이나 쑥을 캐러다녔지만 별 도움이 안됐다』

―북한 영어교육의 실태는.

▲김희영=『북한에서는 외국출판물이 들어오는 것을 「흑색바람」이라며 철저히 막고있다. 미국 삼촌이 영한사전을 보내줬는데 한국이란 글자는 모두 지워져있을 정도이다』

―북한 주민은 김정일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김희근=『90년 이후부터 식량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불평이 고조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같은 불평을 털어놓다가 끌려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최근에는 김정일이 자리에서 물러나든지 아니면 쌀을 주든지 해야 될것 아니냐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다』

―인육을 먹기도 한다는데 사실이냐.

▲안선국=『내가 직접 본 적은 없고 또 이러한 일로 공개처형을 당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사람까지 잡아 먹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경제가 활발한가.

▲김순희=『94년까지는 시장에 나가는 것을 흉칙한 일로 생각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어린 학생들이 시장에 나가는 것도 흉칙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이 신발 등을 스스로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판 뒤 양식을 산다. 시장에는 중국상품이 가장 많고 집에서 만든 것도 있는데 공장제품은 별로 없다』

―주민들이 마약을 많이 사용하는가.

▲김원형=『경제가 쇠퇴하면서 약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약의 경우 가정에서 두통이나 불면증, 대장염 등을 앓을 때 조금씩 사용하기도 한다. 함북 청진의 제약공장에서 제공되기도 하고 가정에서 양귀비를 심어 진을 뽑아 쓰기도한다, 나도 아플때 한두번 사용했다』

―가장 먹고 싶은 음식과 하고 싶은 일은.

▲안일천=『과일이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남한에는 거지들이 많고 미군과 괴뢰군들이 사람을 마구잡아 죽인다고 교양을 받았는데 와서 보니 거지는 없고 사람을 때리거나 잡아가두는 일도 없었다』

―북한주민이 마음만 먹으면 배를 타고 귀순할 수 있는가.

▲안선국=『해안을 통해 귀순한다는 것은 천 번에 한 번 정도 성공할 수 있을 만큼 무모한 행동이다. 그러나 나는 군에 있을 때부터 모험을 즐겨왔고 7∼8년 동안 서해를 항해하면서 북한 경계망에 대해 많이 알아뒀다. 해안경비망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탈출이나 해보자고 결심했다』<이동국 기자>

◎“네가 살아오다니…” 김원형씨 8순 노모 미서 날아와 눈물의 아들 상봉

『네가 무사히 살아오다니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22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커피숍에서 지난 13일 탈북한 김원형씨와 상봉의 기쁨을 나눈 어머니 차순덕(83)씨는 울먹이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쌍둥이 동생 인형씨도 『형님 수고하셨습니다』는 한마디를 건넨 뒤 형을 부둥켜 안은 채 눈시울만 붉힐 뿐 한동안 떨어지지 못했다.

원형씨는 지팡이에 의지한 팔순노모 앞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고 노모는 아들을 부둥켜 안고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 날 아침 아들 인형씨를 재촉해 미국에서 날아온 차씨는 인형씨가 조카들을 일일이 껴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동안 탁자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지긋이 눈을 감았다.

차씨는 아들의 탈북계획을 들은 이후로 하루도 편안한 밤을 지내지 못했다. 자식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다 문득 속이 타 들어가는 듯한 불안감에 눈물로 밤을 지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22일 한국의 조카 일형(62)씨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 「큰어머니, 북한의 형님 가족이 모두 돌아왔습니다」는 조카의 말에 차씨는 『감정이 북받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씨 가족의 감격적인 상봉이 이루어지는 동안 원형씨와 함께 사선을 넘어온 안선국씨 가족은 부러운 듯이 지켜보았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손자 희성(20)씨 등에 업혀 나간 차씨는 『기쁘기 그지 없고 동포들의 환대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차씨일행은 28일까지 원형씨가족과 함께 보낸 뒤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김씨와 안씨 가족들은 질문이 복잡할 때는 질문요지를 메모해 가며 정연하게 답변하는 등 차분함을 보였다. 특히 안씨는 고난의 행군이 끝나면 다음 수순은 무엇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정책담당자도 아닌 내가 다음에 무슨 행군이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며 줄곧 노동당원 출신다운 논리를 펴 눈길을 끌었다.<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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