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색감과 질감 ‘무위자연’ 담아내예전에 집을 지을 땐 두터운 벽을 만들기 위해 우선 벽면에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망을 치고 여기에 진흙을 발랐다. 대나무 망 사이로 삐져나온 진흙은 그렇게 이어지며 견고함을 갖게 된다. 여기서 사람은 더도 덜도 아닌 그저 두 개체의 매개자일 뿐이다.
7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을 이끌었고, 그후로 20여년을 한국의 대표적 모노크롬 작가로 살아온 하종현(62·홍익대 교수)씨의 요즘 화두는 「접합」이다. 성근 마대의 뒷쪽에 물감을 잔뜩 바르고 그것을 뒤에서 밀어낸다. 밀려 위로 올라온 물감을 다시 붓과 나이프로 밀어내고, 치켜올리기를 반복한다.
『마대와 유화라는 별개의 두 물질을 결합, 혹은 접합시키면서도 각각의 개별적 존재성을 인정해주는 것, 바로 이 것이 작가의 몫』이라고 하씨는 강조한다. 순수회화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난 서양의 1940년대 모노크롬운동은 색을 절제하고 단색으로 화면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하씨는 소박한 소재인 마대의 물질적 특성, 즉 엉성한 짜임새를 드러내면서도 다시 그것을 유화물감과 어우러지도록 하는 「중개자」역할을 자처, 모노크롬회화와는 차별화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섣불리 자연에 대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물의 속성을 인정해 주고, 때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유럽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눈여겨 본 프랑스의 유력일간지 르몽드지의 평론가 필립 다장이 『하씨의 작품은 단순한 서양식 모노크롬 역사의 답습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 이유도 이런 때문이다.
뮌헨 도쿄 룩셈부르크 등 외국 전시 때문에 서울 전시를 갖는 것은 92년 이후 5년만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새로 건물을 지은 샘터화랑(02―544―5122)의 개관기념전으로 28일부터 6월16일까지 계속된다. 최근 3년간 그린 200호 이상의 대작 40∼50점이 걸리는 데 특히 안식년 휴가를 갖게 된 지난해 9월부터 부지런히 그려온 작품이 대부분이다.
『예쁘고 화려하게 그릴 수도 있지만 소박한 색감과 질감이 주는 강렬함이 좋다』는 그의 그림에는 점점 「무위자연」의 깊은 맛이 감돌기 시작한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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