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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잔치는 끝났는가/박우규 선경경제연구소 부소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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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잔치는 끝났는가/박우규 선경경제연구소 부소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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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 어느 여성시인이 서른살을 넘기며 펴낸 베스트셀러시집의 제목으로 출간됐을 당시부터 그 제목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보부도사태로 현직대통령 아들과 정치실세들이 구속되는 사태를 보면서, 6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시대부터 30년이상 지속됐던 고도성장과 경제발전의 잔치가 끝나지 않나하는 우려가 생긴다. 이제 국민들 앞에는 고달프고 힘든 설거지가 남았을 뿐이다. 물론 이번 설거지를 잘 하면 잔치를 또 벌일 수 있으나 어설프게 하면 혼란과 갈등으로 빠져들어갈 판이다.그러나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단순히 과거 단죄를 위한 설거지에 국력을 너무 소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장자」에는 「의이불변」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과거사에 대해 세세히 따지기는 하되 재발방지가 목적이어야지 처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김현철씨가 구속되자 마자 언론과 정치권은 정치개혁과 경제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대선후보찾기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청문회, 검찰수사 등에 국민의 호기심이 쏠려있는 동안 삼미, 진로, 대농과 같은 재계순위 30위 내외의 기업이 부도가 났거나 부도직전까지 갔다.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속된 금융불안으로 중견기업의 부도와 실업자가 늘어감으로써 경제가 점차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치제도, 법체계, 국민의식수준 등이 구조적으로 얽혀있는 문제이지만 아무래도 1차적으로는 정치인들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지역구활동과 총선, 대선 등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바로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인 것이다. 도대체 국민의 대표를 뽑는 일에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나라가 우리 말고 어디 또 있을까.

지난번 영국선거에서는 후보자 한사람당 선거경비가 1,000만원정도 들었다고 한다. 우리 정치인들의 선거홍보자료 제작비에도 못미치는 액수이다. 그렇다고 이런 행태가 우리 정치인들이 영국정치인들보다 저질이라서 그런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십년간 굳어온 정치행태와 잘못된 정치제도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특히 주례서고 상가를 찾는 것과 같은 얼굴 알리기식의 활동으로 국회의원 당락이 결정될 정도이다. 국회의원이 어느 정도 지역에 밀착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지금은 너무 심하다.

하지만 정치인 못지않게 타락한 것이 일부 기업인들이다. 그들은 부실기업도 정치권의 힘을 빌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함으로써 살아나기도 했다. 과거 30여년간 일부 부실기업은 정치권력의 막강한 힘과 관치금융을 교묘히 이용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고 그 대가로 정치권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해주었다. 정치제도, 금융제도와 함께 정부의 규제행정 등 3대 권력제도가 오늘날의 총체적 경제난국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정치판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식의 남의 잔치가 아니다. 잘못된 정치는 경제파탄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부도가 잇따르고 금융권이 불안해지며 실업율이 증가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은행의 주인이 없는 현실에서 기업부도로 은행이 부실화하면 정부가 나서서 지원할 수 밖에 없고 이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정치인과 기업인이 망쳐놓은 잔치판을 애꿎은 국민이 설거지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팔을 걷어 붙이고 정치개혁에 나서지 않고 기업인들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잔칫상을 치우기도 전에 나라가 거덜 날 것이며 앞으로 더욱 무서운 재앙이 닥쳐올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대선주자들은 여기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지가 않다. 오로지 대통령되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래서는 정경유착이라는 똑같은 부패의 사슬구조가 깨지지 않음으로써 대형금융사건이나 비리지뢰가 또 터질 수 있다. 성장과 발전의 잔치를 다시 벌이려면 정치인들과 기업이 먼저 자정에 나서고 시민단체와 국민이 감시자로서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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