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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15대 국회 교수의원 27명/교수 정치참여 역사 및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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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15대 국회 교수의원 27명/교수 정치참여 역사 및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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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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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 초대문교장관 ‘1호’/5·16이후 정·관계 진출 급증/5공시절 ‘본격중용시대’/문민정부선 한때 외교 4인방이 모두 교수로 채워지기도교수집단은 역대 정권마다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 왔다.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하는 비서진 외에 총리나 장관으로 특채되기도 했고 아예 국회로 진출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등 엘리트 집단으로서 현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문교부장관으로 입각한 안호상 서울대 교수는 교수 출신으로 관직에 취임한 「외도 1호」로 통한다. 당시 제헌의회에도 성낙서 이화여전 교수 등 교수 출신 6명이 의원의 길을 걸었다. 이승만 정권에는 백낙준(2대) 이선근(4대) 등 문교부장관을 제외하면 변영태 총리, 안동혁 상공부장관 등이 고작이어서 교수출신 장관과 의원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교수들의 정·관계 진출이 급증한 것은 5·16이후. 내각이나 의회에 대거 진출했으며 대통령 자문위원단에 교수들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국가재건 최고회의 시절부터 박정희정권 18년 동안 김상협 문교부장관과 신태환 건설, 김윤기 교통부장관 등을 비롯해 교수 출신은 장관 23명, 국회의원(유정회)도 29명에 이르렀다. 교수 출신 등용은 10·26이후 최규하 대통령 시절에도 이어져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한빈 경제부총리와 김옥길 문교, 이규호 최완복 통일원 장관 등 4명의 교수출신이 입각했다.

대학과 날카롭게 대립했던 5공 정권에서도 교수 등용의 폭은 컸다. 출범전 김만제 권이혁 교수 등 상당수 교수 출신을 입법회의에 포진시켜 본격적인 「교수 중용시대」를 예고했다. 남덕우 김상협 이한기 교수가 국무총리로 기용되는 등 7년동안 17명의 교수가 각료에 임명됐고 21명이 11, 12대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했다. 당시 정·관계 진출 교수들은 군사정권의 정당성 확보에 이용됐다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대부분이 강단 복귀에 실패해 대학과 현실 정치 사이에서 표류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6공과 문민정부에서는 군출신 기용폭이 상대적으로 줄어 듦에 따라 보다 많은 교수들이 등용됐다. 6공 국무총리 5명 중 4명, 4명의 경제 부총리 중 3명이 교수출신이었으며 각료만 23명이었다. 29명의 교수출신이 배지를 단 13, 14대 국회에는 교수 출신 정치인들의 지역구 출마가 줄을 이었고 여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교수 영입이 야권에서도 활기를 띠게 됐다.

문민정부 들어 초대 내각에 한완상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통일부총리로 발탁되는 등 현직 교수가 5명이나 기용됐으며 청와대 비서진에도 교수 출신 인사가 상당수 임명됐다. 한때 통일부총리 안기부장 외무부장관 외교안보수석 등 「외교 4인방」이 모두 교수출신으로 채워지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현재까지 총리 3명을 포함 모두 13명의 교수 출신이 장관에 기용됐고 안병영 교육, 손학규 보건복지, 권숙일 과기처 장관 등 3명의 교수 출신이 현 내각에 남아 있다. 지난해 개원한 15대 국회에는 장을병 양성철 의원 등 19명의 교수출신 지역구 의원이 배출됐고 이홍구 김덕 의원 등 8명이 전국구로 진출해 의정사상 가장 많은 교수출신 의원을 배출했다.<염영남 기자>

◎친분관계가 정계입문 ‘지름길’/학연·지연·자문 등 통해 평소 터닦기/본인의 활동·영입 경우도 적지않아

교수들의 정·관계 진출은 개인적 친분관계, 정치권의 영입 제의, 본인의 적극적 정치 활동 등 다양한 요인과 경로를 통한다. 그 중에서도 학연과 지연, 자문활동과 소개 등을 통한 유력 정치가와의 개인적 친분관계는 정계 진출의 지름길이다. 신한국당 한승수 의원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사위인 한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정·재계에 폭넓은 친분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정계 진출에 도움이 됐던 것으로 보여진다.

정치인과의 친분관계는 정책자문이 계기가 되는 예가 많다. 이수인 민주당의원(영남대 정외과)은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자문에 응한 것이 인연이 돼 90년 영광·함평 보궐선거에서 평민당후보로 공천받았다』고 말했다. 15대 총선에서 전국구로 진출한 것은 김원기 전 의원과의 개인적 친분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노재봉 전 총리(서울대 외교학과)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민정당 대표시절부터 자주 정치적 자문을 구했고, 88년 6월 민정당 의원세미나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돌출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대통령 정치담당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됐다.

정치권의 적극적인 영입으로 정·관계에 진출한 예도 적지 않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조순 서울시장은 육사 영어교관 시절 제자였던 김복동 의원 등의 적극적인 제의에 따라 경제부총리로 입각했다. 6공초기 총리로 발탁돼 10개월만에 물러난 이현재 전 총리(서울대 경제학과)는 6공 정부가 참신성과 민선이미지를 부각하려고 적극적으로 영입한 경우다.

본인의 활발한 정치활동으로 정치권에 진입한 경우도 있다. 박재윤 전 통산부장관(서울대 경제학과)은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의 경제특별보좌역을 맡는 등 선거운동에 앞장서 문민정부에서 경제수석과 재무부장관 등을 맡았다.

시민운동이나 반정부 재야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정치권 진입의 한 경로다. 장을병 의원(성균관대 총장)은 경실련 공동대표를 지내며 활발한 시민운동을 펼치다 정치개혁의 기치를 걸고 국회에 진출했다. 한완상 전 통일원장관(서울대 사회학과)은 70년대 유신시절부터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13, 14대 대선때는 김영삼 후보의 핵심자문역을 맡았다. 권철현 의원(동아대 행정학과)과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서울대 사회학과)도 공선협과 경실련에서 시민운동을 한 인물이다.<배성규 기자>

◎교수→국회의원→관료→교수 국가상징자문위원장 최창규씨/“이론과 현실사이엔 괴리/그래도 교류는 활발해야”

국가상징자문위원회 최창규 위원장은 강단과 현실 정치 사이를 오가면서 온갖 일을 겪었다.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시절인 81년 휴직과 동시에 민정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발을 내디딘 그는 충남 청양·홍성·예산에서 11, 12대 내리 당선됐다. 신군부와는 아무런 연줄이 없었지만 구한말의 큰 선비 면암 최익현 선생의 현손인데다 현직 서울대 교수였다는 점이 발탁 이유가 됐을 것이라는 게 당시 소문이었다. 『유신 독재가 끝나고 시작되는 새 정권에서 정치사를 새롭게 그려 보겠다는 생각에서 제의를 받아 들였지요』

그러나 정치인의 길은 생각같지 않았다. 선거일은 다가 오고 돈은 계속 들어 가는데 자금을 끌어 오기가 쉽지 않았다. 『고향에서 출마하는데 무슨 돈이 들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아는 사람들이 도와 줘 간신히 자금을 댔습니다만 곁에서 구경하던 선거와 실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큰 애를 먹었습니다』

의정 활동도 만만하지 않았다. 힘의 게임인 중앙 정치무대에서 몇 안되는 교수출신들이 제목소리를 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친한 정치인이 없는 데다 철학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계파나 조직을 구성할 수 없어 군출신, 같은 지역출신, 기존 정치세력 등으로 나뉘어 있던 정치집단과 정책별로 늘 차선의 타협을 해야 했다.

『올곧은 주장을 내세워도 지지세력 형성이 되지 않아 번번히 차단되는 데다 튀는 발언이 잦다며 모함하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적절한 처세만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란 걸 깨닫고 난 뒤 정치에 회의가 들었지요』

최위원장은 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포기하고 7년만에 학교로 돌아 갔다. 그러나 대학현실은 「정치이론과 현실정치를 접목하겠다」는 그의 포부를 뿌리내리게 하는데 적합하지 않았다.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데다 후진에게 길을 터 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 사표를 던졌다.

92년 제3대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해 두번째 외도를 시작했다. 3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 11월 국가상징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돼 활동하다 지난 3월부터는 연세대 국학연구원 초빙교수로 9년만에 다시 강단에 섰다.

그는 『자기 욕심을 앞세운 처세형 교수들이 정치에 나서고 있는 문제점만 해결되면 정계와 학계의 교류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이 정책 결정과정에 반영돼야 하고 현실 정치와 이론을 접목한 피부에 닿는 강의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학교에서 인정받은 교수면 정치에서도 성공할 만큼 여건이 성숙했습니다』<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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