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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사회 거센 ‘정치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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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사회 거센 ‘정치열풍’

입력
1997.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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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두고 눈에띄는 ‘용들에 줄대기’/참여교수 400명이니 500명이니 설… 설…/학문의 현실참여인가 참을 수 없는 권력에의 유혹 때문인가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5공 초기 한 사립대 교수가 대통령을 사사건건 꼬집다가 관계 기관에 불려갔다. 그는 그 자리에서 『각하를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어서 그랬다』는 이유를 댔다. 이 일로 대통령의 환심을 사게 된 그는 얼마뒤 장관이 됐고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교수사회에 떠도는 이 일화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일부라 하더라도 교수들이 정·관계 진출을 얼마나 열망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올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학교수 출신 인사들을 포함, 사상 유례없이 많은 대선 주자가 거론되고 있다. 이때문에 교수사회의 정치바람도 거세다. 가히 교수사회에 정치열풍이 불고 있다할 정도다.

더욱이 지난해말 교육공무원법 개정으로 공무원이 된 교수도 휴직할 수 있게됐다. 지금까지는 국회로 진출하는 교수만 휴직이 가능했다. 국공립대학 교수들이 정·관계에 진출했다가 언제든 학교로 되돌아 올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아주 튼튼히 확보된 것이다. 이제 대선 주자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과거와 같은 「투기」가 아니라 「투자」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정가와 학계에는 대선 주자 진영에 합류한 교수가 400여명이니, 500여명이니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당사자들은 이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다. 『인간적으로 서로 알고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이 올라 갔다』 『이름을 넣겠다고 부탁을 해 와 차마 거절하지 못했을 뿐이다』는 설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교수는 특정인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적극적인 지지 발언을 행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교수 사회에 파벌이 조성되기도 한다.

신한국당 박찬종 고문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서울대 법대 이상면 교수는 『법대의 경우 개인적 친분관계, 정치적 견해에 따라 대선 주자별로 파가 갈렸지만 표면적인 반목이나 대립은 없다』며 『정치참여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교수가 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한국당 이수성 고문을 지지하는 교수들은 과거 법대 학장 선거때부터 그를 밀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가 거론한 한 동료교수는 『사석에서 이수성고문에게 자주 조언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교수들보다는 이고문을 자주 만나는 것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교수 사회의 「대선 주자 줄대기」움직임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서울대. 선우중호 총장은 최근 『교수가 본연의 임무를 게을리하면서 정치활동을 할 때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우총장의 이 발언은 그만큼 서울대 교수들 이름이 자주 정치인들 사이에 오르 내리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서울대 사회대 한 교수는 최근 출판기념회에서 교수출신 대권 주자를 불러 축사를 하도록 했다가 동료 교수들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했다.

사립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고려대 정경대의 한 교수는 『사립대는 휴·복직이 쉽고 정·관계 진출을 명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선 구도 등 대선 후보의 윤곽이 잡히면 줄서기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한 숙명여대 교수는 『벌써부터 출신고교와 대학, 과별 교수 모임이 잦아졌다』며 『소신파들은 이미 7, 8개 관변 보직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이 교수들을 이렇게 움직이고 있을까.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후보 진영에서 뛰었던 사립 명문대의 한 교수는 장관급인 직책으로 발령났다. 관용 승용차와 수당이 나오고 고위 관료 대접도 받았다. 다른 교수들로부터 『장관급이라고 어깨를 세우고 다닌다』고 비아냥거림을 받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5공시절 모연구소장을 지냈던 사립대 K교수는 나중에 학교로 돌아왔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두달도 안돼 다시 정계로 나갔다. 사립대 교수로 장관을 지내고 학교로 돌아 갔던 N씨 역시 한학기도 못채우고 다시 떠났다. 주변 교수들은 『권력의 달콤한 맛에 비할 때 강의 준비란 얼마나 따분하고 힘들겠느냐』고 꼬집었다.

교수들의 의식보다는 교수 사회를 뒤흔들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정치권의 의도가 더 큰 문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서울대 교수는 『정치인들이 평소 경제적 지원을 좀 해주었거나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교수들의 이름을 마구 자기 진영의 정책자문·보좌진 명단에 올린다』고 말했다.

서울대 지리학과의 한 교수는 경기도가 발주한 프로젝트를 맡았다가 이인제 경기도지사 진영의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또 서울대 경제학과의 한 교수는 아예 이름이 도용됐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 최형우 의원의 친구인 그는 『최의원에게 수시로 조언을 해줬더니 이름을 집어 넣는 바람에 모욕감을 느꼈다』며 『그가 입원하는 바람에 인정상 항의할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한 교수는 『사회전체가 정치화하는 판에 대학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며 『대학 내부의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너무 바깥 바람을 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조재우 기자>

◎교수출신 대통령 탄생할까

첫 교수 출신 대통령? 건국 이래 교수 출신은 대선과는 인연이 없어 대통령은 물론 유력한 후보 반열에 오른 적도 없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해방후 10개월간 서울대 사범대 교수를 지낸 뒤 행정부에 들어가 제10대 대통령이 됐지만 1년도 안되는 경력이어서 교수출신 대통령이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5대 대선은 상황이 다르다. 교수 출신 정치인들이 강력한 예비 후보군을 조성하고 있다.

대선 주자 반열에 바짝 다가서 있는 교수 출신 정치인은 신한국당 이홍구 이수성 두 상임고문. 이홍구 고문은 서울대 정치학과, 이수성 고문은 서울대 법대교수를 각각 지냈다. 또 야권에서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조순 서울시장이 「제3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홍구 고문은 6공 출범과 함께 통일원 장관으로 입각해 국무총리와 신한국당 대표 등을 역임했고 6공의 경제 부총리로 들어 온 조순시장은 한국은행 총재를 거쳐 95년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상대적으로 정·관계 경력이 짧은 이수성 고문은 직선 서울대 법대학장과 총장을 역임하고 95년 12월 국무총리에 발탁됐다. 지난 3월에는 신한국당 고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이처럼 교수 출신이 주가를 올리는 것은 개인적인 정치 욕구와 역량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서 비롯했다는 분석도 있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염증이 정계 출신이 아닌 신인 후보군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낳았다는 것. 또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3김 정치」가 정치권 자체에서 2인자의 부상을 허용하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도 많다. 비교적 정치색이 없는 교수 출신을 내세워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계파간 정치 담합의 산물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교수 출신 대선 주자들은 기성 정치권에 오래 몸담지 않았기 때문에 참신함을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다. 반면 정치적 기반이 없다는 약점은 참신성을 제약하게 된다. 계보나 지지세력이 있을 수 없어 당내 대주주와의 타협이 불가피해 결국 기성 정치인과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특별한 원칙없이 정권 창출을 목표로 계파 보스들과 합종연횡할 개연성이 있고 「무임 승차」 혹은 「굴러 들어온 돌」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교수 출신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것은 스스로의 정치적 운명도 관심사지만 이런 합종연횡의 와중에서 정치권의 역학구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의 두 교수 출신 고문은 당내 최대 계파인 민주계의 지원을 얻기 위해 다각도로 뛰고 있다. 이홍구 고문은 집단지도체제를 내세우며 민주계를 유혹하고 있고 이수성 고문도 은근히 「당내외의 기대」를 강조하며 한걸음도 물러 날 태세가 아니다. 한편 조시장도 범야권 통합 후보론과 DJP의 양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 중에서 15대 대통령이 나올 지는 미지수다. 다만 국민은 이들이 학자 출신답게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페어플레이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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