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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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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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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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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들 돌아올까 밤중에도 문 안닫고/유탄파편 후유증에 가세마저 기울기도5·18희생자들의 분묘 이장이 시작된 9일 하오 광주 망월동 5·18묘역. 봉분이 파헤쳐진 한 희생자 묘 앞에서 노부부가 눈물을 글썽이며 조심스럽게 유골을 수습하고 있었다.

전남도청 사수전에서 진압군의 총에 맞아 숨진 이정연(당시 20세·전남대 상업교육 2)씨의 부모 이천균(66)씨와 구선악(57·여)씨는 도청을 지키겠다며 집을 나서던 아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씨가 눈물로 만류했지만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를 설득했다. 『아버지 때부터 무서워 뽑지 못한 잡초때문에 민주주의가 죽고 있어요. 이제는 우리의 피로 군부독재라는 잡초를 뽑아야 합니다. 아들이 평생 부끄러운 비겁자로 살기를 바라십니까. 절 보내주세요. 꼭 살아돌아 올 겁니다』 어머니 구씨는 『아들의 각오가 너무 비장해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다』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27일 새벽 정연이가 집마당에 돌아와 반듯이 누워있는 꿈을 꿨어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며칠간 미친듯이 찾아다녔죠. 사흘 뒤 동사무소에서 아들의 사망통고를 받았어요』 구씨는 망월동에서 오른쪽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아들의 시신을 보는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한달동안 실신상태로 누워있어야 했던 구씨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망월동 묘역을 찾았다. 구씨는 남편과 함께 92년까지 보안부대와 경찰의 감시 속에 고통을 받았고 구속자 석방시위에 참가했다가 보름동안 경찰서에 구금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아들 시신이나 찾을 수 있었지만 실종자 가족은 아직 뼈도 못찾은 채 가슴 아파하고 있어요』

지금도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 문을 열고 잔다는 구씨. 재판을 통해 전·노씨가 단죄를 받고 5·18이 기념일로 지정되기까지 했지만 그것만으로 아픔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전씨가 광주 시민들앞에 무릎꿇고 잘못을 사죄하기 전에는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유골을 정성스레 매만지던 구씨는 총구멍이 난 아들의 뼈를 보며 끝내 오열했다.

5·18은 부상자들에게도 치유될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광주 쌍천동 집에서 진압군이 쏜 유탄에 오른쪽 어깨를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긴 최복순(55·여)씨는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납탄 조각 수십개가 어깨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파편이 작고 상처가 오래돼 수술이 불가능한데다 납중독 증상까지 심각한 상태다. 『피가 안 통해 항상 팔과 어깨가 저리고 신경도 마비돼 감각을 못 느낄 때가 많아요.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지만 국내에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해요』

총상을 입을 당시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했지만 폭도 취급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한달만에 강제퇴원됐다. 경영하던 미용실은 문을 닫았고 건축업을 하던 남편도 간병에만 매달려 먹고 살기도 쉽지 않았다. 총상의 고통 뿐 아니라 아이들 걱정에 마음 고생도 컸다. 『돌봐 줄 사람도 없이 내버려진 5남매 모습을 보는 것이 제일 가슴 아팠어요. 엄마가 누워만 있으니 아이들이 끼니를 굶기 일쑤였고 옷도 다 떨어진 채 다녔어요』

최씨는 어깨 통증이 심해질 때마다 울분이 솟지만 혼자 삭일 수 밖에 없다. 『미국에 가서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어 고민이에요. 평생 아픔을 갖고 살아야 할 운명인가 봐요』<배성규 기자>

◎진압군 “나도 피해자입니다”/죄책감에 시달리다 정신병·가정파탄까지

『나도 5·18피해자입니다. 5·18만 되면 총을 맞고 숨져간 피해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너무 괴로워요. 주위에서는 진압군이었다는 이유로 나를 학살자라고 매도하지만 명령에 따라 행동한 사병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광주 진압군(20사단)으로 투입됐다 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게 된 이성우(38)씨. 그는 96년 4월 5·18피해자 유족들을 만나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한달 후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정신분열증세를 일으켜 청주의료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경상대 무역학과 재학시절 시와 수필을 좋아하던 문학청년에게 「광주」는 벗을 수 없는 굴레가 되어 그의 머리를 감았다.

이씨에게 5·18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사정도 모른 채 수송기에 실려 광주에 도착한 그는 시체가 나뒹굴고 총성이 요란한 광주의 참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씨는 입원 직전 『진압도중 오인사격으로 어린아이를 죽였다』며 『시신은 차마 보지 못했지만 엄청난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다』고 고백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희생자들의 모습과 죄의식으로 제대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대학을 중퇴해야 했으며 결혼 3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 박혀 말도 하지 않았고 5·18만 다가오면 우울증과 음주벽이 더욱 심해졌다.

92년 육군본부에 정신적 상처를 이유로 상이군인 신청을 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96년 3월에는 5·18유족회의 도움으로 조선대병원에서 한달 가량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청주의료원 관계자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후 신경계에 장애가 일어나는 외상후 신경장애 증상을 앓고 있다』며 『상태가 호전되기는 했지만 정신적 상처가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5·18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당시 진압군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3공수여단 출신 이모(39)씨는 『광주교도소앞 자동차학원 건물 옥상에서 시민들에게 기관총을 난사, 많은 시민들이 쓰러졌다』며 『내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 미칠 것만 같다』고 호소했다. 이씨도 제대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이혼하고 술에 의지해 살고 있다.

광주외곽 경비임무를 맡았던 20사단 출신 김모(41)씨는 동료 부대원이 민간인을 오인사살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직도 마음이 괴롭다. 김씨는 『광주가 폭도와 간첩들에게 점령돼 있으니 사명감을 가지고 진압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며 『세월이 지나면서 진압 영웅이 살인자로 변하고 피해자 유족들의 아픔을 접하면서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고 고백했다.<배성규 기자>

◎어엿한 군인이된 ‘그때 그 꼬마’

사진 한장으로 5·18의 비극적 참상을 세계에 알렸던 5살 꼬마 조천호. 진압군의 총탄에 사망한 아버지(조사천·당시 34)의 영정을 들고 있던 사진이 외신을 타고 나가면서 화제가 됐던 아이는 이제 22세의 어엿한 군인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군인들이 미웠지만 내가 군인이 되어보니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을 두고 먼저 떠난 아버지를 수없이 원망했지만 지금은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던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한다』

17년간 홀몸으로 3자녀를 돌봐오던 어머니(정동순·43)마저 암으로 고생하는 것이 더없이 가슴 아프다. 망월동 묘역을 찾은 조씨는 『5·18은 한 가족의 아픔이 아니라 온 국민의 아픔이다.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미주판 5·18보도/19일 보도시작 21일부터 호외/계엄군 시민구타 사진 등 게재

「광주 최악의 사태」 「최소 백여명 이상 사망, 사망자수 앞으로 계속 늘어날듯」 「이 비극 누구의 책임인가」

80년 신군부가 국내 언론에 재갈을 물려 「북괴의 사주를 받은 광주 폭동」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보도토록 억압했을 당시, 한국일보 미주판(LA 발행)은 광주의 비극을 이렇게 전했다. 한국일보는 80년 5월18일자에서 「계엄확대 후 광주에서 고교생 첫 데모」라는 제목으로 광주의 암운을 예감했다. 광주 상황이 구체적으로 보도된 것은 19일자부터. 「연 이틀째 시가전 방불」 「시위군중속, 공수부대원들 헬리콥터로 공중투하」 등의 제목을 단 기사였다. 21일부터는 호외 발행을 시작하면서 계엄군에 구타당하고 있는 시민모습, 전두환 퇴진 플래카드를 부착한 시위차량 등 AP, UPI가 전송한 모든 광주 상황 사진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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