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설계로 비용낭비·붕괴 초래/지질조사 제도화·관리체계 시급14일 석가탄신일에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대단위 재개발 아파트단지에서는 축대가 무너져 한 명이 숨지고 수많은 입주자가 불안에 떨어야 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우기와 해빙기에 산사태가 빈번히 발생, 매년 100여명의 인명과 수천억원의 재산을 앗아가고 교통두절 공기연장 공사비증가 등 불필요한 국가자산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인위적인 절취사면의 붕괴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70%가 산지이므로 전국에 걸쳐서 인위적인 절취사면이 수만개 정도 산재해 있다. 또한 광범위한 교통망 확충과 대도시 인근에서의 택지 조성, 채석장 골프장 건설 등으로 많은 절취사면이 새로 생겨난다. 지난 1월에는 경기 파주시의 금병산에서 채석공사로 인해 절취사면이 붕괴됐고 최근에는 경남 하동 부근에서 철로변 절취사면이 붕괴해 기차가 탈선한 사고도 있었다. 현재 토목구조물의 부실시공으로 문제가 되고있는 경부고속철도도 절취사면의 붕괴로 심각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철저한 대책이 요구된다.
근래에는 토목공사때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나 암석 절취사면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아직 인식이 부족한 실정인데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설계기준이 미흡하다. 지질특성상 토사가 1∼3m두께로 얇고 대부분이 암석이어서 절취사면은 암석내에 존재하는 틈새인 불연속면(절리 단층)을 따라 붕괴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설계방법은 상부지표면 몇지점에서 지하로 시추지질조사를 수행하여 시추암석의 풍화상태에 따라 일률적으로 절취경사를 결정, 불연속면이 절취사면의 안정성에 미치는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불안하거나 비경제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암석은 일률적으로 63∼73도 경사로 설계하는데 불연속면이 위험하면 45도 경사로 더 완만하게 하거나 불연속면이 안전하면 90도경사까지 가파르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암석종류(화성암 퇴적암 변성암)에 따른 불연속면의 발달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절취사면을 획일적으로 지질조사, 설계하는 것도 문제이다.
둘째, 올바른 지질조사 방법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암석 절취사면은 불연속면을 따라서 붕괴되므로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조사 설계해야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수행하는 일반적인 시추조사방법만으로는 불연속면에 의한 위험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표면의 노출된 암석에도 지질조사를 병행, 3차원적으로 지질상태를 해석해 설계해야 한다. 또 지질은 복잡하므로 기존설계에서 판단한 지질상태를 굴착공사후 최종 절취사면에서 재확인해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지표 지질조사와 최종 절취사면 지질조사에 대한 명문규정이 없고 설계자와 감리자의 인식부족으로 올바른 지질조사 방법이 간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로 인해 절취공사중 붕괴사고가 발생하면 공사가 중단되고 사후약방문식으로 그때서야 보강공사를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붕괴원인에 대한 판단미숙으로 재공사후에도 또다시 붕괴돼 3차 보강공사까지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셋째, 절취사면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관리가 부족하다. 국내에서는 절취사면 붕괴에 관해 아직까지 사후 복구대책에만 급급하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해빙기와 우기에 관련공무원들이 위험지역을 주관적으로 판단, 관리하고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정부기관과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홍콩에서는 72년 대규모 산사태로 인한 아파트 붕괴사고로 67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겪은 뒤 절취사면을 종합 관리감독하는 국가기관이 설립됐다. 전문가들이 기존 절취사면의 안정성을 재검토하여 순차적으로 가장 위험한 것부터 보강하고 신설되는 절취사면은 사전 설계단계에서 정밀지질조사를 수행해 안전이 확보돼야만 토목공사를 허가하도록 제도화했다. 그 이후에는 절취사면의 붕괴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국내의 건설정책 입안자들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서울시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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