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디자이너는 유럽의 디자이너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아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패배주의적 발상이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패션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못한 나는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요즘 해외유명브랜드 도입을 둘러싸고 재벌그룹과 대형의류사간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이라 더더욱 그러했다.
서로가 상대회사보다 더 많은 로열티를 주겠다고 제시하자 제공사는 아예 직수입으로 돌렸고 하한 수입의무량을 요구하는 국제적 망신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수입브랜드로 손쉽게 돈벌겠다는 기업생리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의 외제선호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다. 팔꿈치가 떨어진 옷을 입고 저녁파티에 가는 유럽여성, 양복차림의 말끔한 신사가 허름한 시장바구니를 들고 출근전차를 타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패션은 「자기주장」이라는 억지로 만들어낸 수식어가 아닌 그저 자연스럽고 당당한 생활방식이다. 무슨무슨 브랜드의 옷을 입어야 체면이 선다는 논리는 가당치도 않은 우스갯거리일 뿐이다.
앞으로의 패션트랜드는 「마음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라고 한다.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리얼리티와 로맨티시즘 등 온갖 복잡함이 섞인 애매모호한 패션으로 전문가 조차 방향을 설정할 수 없을 정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럴때야말로 패션 사대주의를 떨쳐버릴 수 있는 호기이다. 개성과 특성없이 누가 좋다면 우르르 따라가는 「떼거리 패션」도 당연히 사라질 것이다. 수입의류를 입건, 길거리에서 산 옷을 걸치건간에 균형을 잘 맞춰입으면 그것이 최상의 패션인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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